FEATURES
Cocoon의 20년
Sven Väth의 Cocoon이 댄스뮤직에 있어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된지 올해로 20주년을 기념한다
글: Duncan Dick 메인이미지: phrank.net | 2016-09-28

2016년, Cocoon Ibiza의 오프닝 파티다. Amnesia의 VIP 발코니는 Cocoon 패밀리와 친구들로 꽉 찼다. Sven Väth가 샴페인 두 잔을 들고 소파로 향하는 동안 여기 저기서 그를 껴안고 인사를 건넨다. Mixmag도 그 중 하나. 35년째 디제잉과 20년째 창작을 해오고 있는 그는 기념할 거리가 많다. 그가 말한다. “오프닝 파티만 할라치면 긴장이 돼. 그러면서 동시에 어마어마하게 흥분되지. 나는 물론 DJ지만 동시에 사장이고 프로모터니까. 최선을 다하고, 성공해야지. 우리가 원하는 건 사람들이 행복해하는 거야.” 발코니 밑을 내려다보니 (이비자에서는)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꽤 바글바글하다. Cocoon 최고의 스타 중 한 명인 Ilario Alicante가 Sven의 ‘Accident In Paradise’의 KiNK 리믹스 등의 트랙들로 메인룸을 빛내고 있다. 그 동안 Dixon은 테라스에서 자기만의 셋의 향연을 펼치고 있다. 5,000명 이상을 수용하는 클럽에서 열리는 19주 동안의 파티 첫 날이다. 거기다 도쿄부터 리즈(Leeds)의 Temple Newsam 등 십여 건의 페스티벌과 클럽나잇, 아레나를 합쳐보면, 행복한 사람들이 잔뜩이다.


부킹 에이전시(2014년에 ‘Flash Artist Booking’으로 개명), 레이블, 글로벌 이벤트회사로 성장한 Cocoon 역시 당연히 파티로 시작했다. 1996년, 프랑크푸르트의 Alte Brauerei 라는 한 공업 건물에서 열린 레이브에 Cocoon의 이름이 처음으로 사용됐다. 당시 라인업은 Sven, DJ Hell, Underworld, Alter Ego, the Advent 등이었다. 1994년에 Sven의 부킹을 시작하고 2009년까지 Sven의 곁에서 조직의 성장을 도운 Talida Wegener도 당시를 생생하게 기억한다. “곡예사들에 스틸트를 탄 사람들, 벽에 매달려있는 사람들… 굉장히 고급이었고, 거기 있는 사람들이 다 좋아했어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곳에는 사람들이 충분히 많지가 않았다. Talida가 말한다. “크게 손해 봤죠! 그런 규모의 이벤트를 하려면 보통 프로모션도 하고, 마케팅도 하고, 스폰서도 구해야죠. 하지만 Sven이 원하지 않았어요. 그 열정, 그 진정성을 타협하기 싫었던 거죠. 게다가 자기 친구들을 다 부르면 공간을 채울 수 있을 줄 알았어요!”


"Sven은 그 열정, 그 진정성을 타협하기 싫어했죠." - Talida Wegener


Sven Väth는 Cocoon 이전에도 이미 독일 최고의 DJ였고, 유럽을 강타한 ‘Electrica Salsa’ 덕분에 팝스타의 반열에 올라 있었다. 정기적인 라디오 쇼, 디제잉, 자신의 레이블 Harthouse와 Eye Q, 1988년에 프랑크푸르트에서 시작한 첫 클럽 Omen이 그의 유명세에 일조했다. 전세계 Cocoon 이벤트에 고정적으로 다니는 Adam Beyer는 이렇게 회상한다. “1993년에 17살이었을 때 Sven이 플레이하는 걸 보러 스웨덴에서 방방곡곡엘 차를 몰고 돌아다녔어.” Sven은 지나치게 욕심을 냈던 첫 번째 파티 이후 Omen에 돌아가 플레이를 하고 있었지만 그 동안 Cocoon 브랜드는 날개를 펼치고 있었다. Sven이 말한다. “일단은 이벤트를 시작해보자는 게 동기였어. 그러다 아티스트들을 지원하고, 내 인맥과 경험을 가지고 Cocoon 부킹으로 플랫폼을 마련하고, 젊은 인재들을 후원해서 파티에 출연시키자는 아이디어가 따라온 거야.” Cocoon은 곧 독일과 유럽 최고의 DJ들뿐만이 아니라 Josh Wink부터 Carl Craig 등 미국의 스타들과도 계약을 맺기 시작했다. 오늘날에는 Cocoon의 Eats Everything, Tim Green, Subb-an 등을 비롯한 영국의 아티스트들과 더불어 Wink, Frank Lorber, Dana Ruh 등이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1998년, Omen은 면허 문제로 문을 닫은 상태였고 Sven은 프랑크푸르트의 U60 클럽에서 매달 2~3천 명을 대상으로 Cocoon 파티를 열고 있었다. 그러다 그에게 전화가 걸려 오고, 그때부터 모든 것이 바뀌고 Cocoon은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테크노 파티로서의 입지를 얻게 된다.


Sven은 이렇게 회상한다. “내가 Cocoon을 시작했을 당시 나는 언젠가 내 꿈을 꼭 실현시켜서 이비자에서 현실로 만들고 싶다는 말을 했었거든. 그곳, 그 섬에 뭔가를 돌려줘야 한다는 느낌을 받았었어. 처음의 동기는 그거였지.” Sven은 Ku(지금의 Privilege)에서 첫 이비자 공연을 한지 10년 뒤, Amnesia 사장의 아들인 Martin Ferrer로부터 1999년 여름 동안 Amnesia에서 네 번의 파티를 주최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Sven은 Richie Hawtin을 불러 프랑크푸르트 시절부터 친구인 Ricardo Villalobos와 나란히 플레이했다. 이비자에서 이제 겨우 두 번째 공연이었다. Manumission, Cream, Gatecrasher 등 이비자의 UK 슈퍼클러빙 전성기였다. Sven이 말한다. “90년대에는 영국의 슈퍼클럽들이 이비자의 클럽씬을 지배했어. 음악은 굉장히 저급해졌지. 그래서 Cocoon이 나선 거야. 내가 처음 사랑에 빠졌던 이비자의 클럽라이프 정신을 되찾으려고.” 음악은 강하고, 142bpm 정도로 빠를 때도 있었다. Cocoon은 월요일 밤마다 이비자의 제왕 Manumission과 경쟁했고, 무료로 입장한 현지인들과 몇 백 명의 독일인들, 골수 테크노 팬들만 나타나면서 프랑크푸르트에서 열었던 첫 번째 파티 같은 상황이 반복되곤 했다. 마지막 날, Sven은 오전 10시까지 150명을 위해 플레이했다.





Talida는 이렇게 회상한다. “나는 이런 말을 하곤 했어. Sven은 모터보트고 우리는 그의 아이디어와 이상을 좇아가려고 애를 쓰는 나룻배라고.” 몇 년 후, 이비자와 댄스뮤직계가 마침내 Cocoon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Adam Beyer가 말한다. “2003년인가 2004년에 Richie Hawtin의 빌라에서 머문 적이 있어. Richie가 독일의 Kompakt 스토어에서 사온 2백 장의 새 무명 음반들을 듣곤 했지. Ricardo도 같이 살고 있었는데 같이 Cocoon에 갔어. 그러면 집에서 애프터파티를 화요일이나 수요일까지 하곤 했어. 그냥 독일의 소규모 레이블들에서 나온 흥미로운 음반들을 들으면서 말이야.” Beyer는 이비자 최초의 제대로 된 테크노 파티인 Cocoon의 음악이 새롭고 더 섹시한 테크노를 반영하기 시작하면서 Richie의 새로운 사운드 기반과 Sven의 Cocoon의 플랫폼이 ‘완벽한 시너지효과’를 냈다고 말한다.


Luciano는 몇 년 전, Mixmag에게 이렇게 말한 적 있다. “어느 순간 음악이 다시 따뜻해졌더라고. 강하고 직설적이고 차가웠던 테크노가 따뜻해진 거야. 스트로브랑 딱딱한 사운드밖에 없는 어두컴컴한 공간이 아니라 이비자의 오후에도 플레이할 수 있는, 사람들의 감정과 옷차림마저도 바꾸는 음악이 된 거야… 사람들이 튀는 색의 옷을 입고, 얼굴에는 미소가 보였어. 어떤 여자들은 그걸 정말 좋아했어. 음악이 애티튜드를 바꾸고, 바뀐 애티튜드가 다시 음악을 바꾸는 거지.”


"Cocoon은 테크노에 창조적이고 시각적인 개성을 불어넣었어." - Carl Craig


원래 ‘미니멀’했던 테크노가 더 따뜻하고, 느리고, 섹시한 사운드로 획기적인 변화를 맞으면서, Amnesia의 (당시) 야외 테라스, 창의적인 프로덕션과 디자인, 단호하면서도 개방적인 음악정책, 애프터라이프 문화, Richie와 Ricardo와 Sven의 재능은 Cocoon이 댄스뮤직에서 가장 핫한 신개발의 물결을 타고 성장하기에 완벽한 조건이었다. 2003년이 되었을 즈음에는 테라스 전체가 Ricardo를 중심으로 프로그래밍되었고 Mr C부터 John Digweed까지 모두가 댄스플로어에서 함께 하곤 했다. Sonja Moonear와 새 Cocoon Ibiza 컴필레이션을 믹싱한 Carl Craig가 말한다. “처음 이비자에 와서 Sven의 파티 전단지를 봤을 때가 생각나네. Sven의 눈 주위에 별이 그려져 있었어. 마치 Kiss의 업데이트 버전 같았지! 그게 테크노에 개성을 불어넣었어. 창의적으로, 시각적으로.”


그때부터 Cocoon Ibiza는 앞만 보고 달렸다. 2001년, 이전부터 클럽 홍보에 힘쓰며 DJ들을 끌어온 Johannes Goller가 이비자 팀의 팀장을 맡았다. 그가 말한다. “우리가 월요일마다 하는 건 진짜 유니크해. 늘 섬에서 5~6백 명이 모이는데 다들 서로 알고, 댄스플로어에서도 어디에 가면 누가 있는지 서로 아니까 가끔 나랑 Sven이랑 DJ 부스에 서서 댄스플로어를 쭉 둘러보면 이탈리아 애들 있고, 스위스 애들 있고, 아르헨티나 애들 있고, 첫 번째 파티 때부터 친구들 있고… 다 단골들이지.” Cocoon은 이비자마저 바꿨 놓았다. 2016년 이비자에는 Space의 Onyx부터 Circo Loco의 Music On까지 테크노 파티가 부쩍 늘었다. Cocoon은 음악의 지평을 열었을 뿐 아니라 Jamie Jones’ Paradise부터 Do Not Sleep과 Fuse까지 그 모든 음악의 깊이와 범위를 확장시켰다.





물론 모든 것이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가끔씩 클럽의 성공이 지나쳐서 문제일 때도 있었다. 4천5백 명의 사람들이 모인 2004년 Talamanca 해변 애프터파티가 한 예다. Johannes가 말한다. “사람들이 차를 3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세워놓고 걸어 들어오고 있었어. 경찰이 보트를 타고 나타났지. 차로는 도저히 접근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거든. 그런데 우리더러 파티를 멈추지 말고 계속 하라는 거야. 경찰이 그러더라고. ‘이 파티를 지금 중단하시면 도로가 붕괴돼버리겠어요!’” 클럽들과 애증관계를 맺고 있는 이비자 당국의 변덕스러운 정치 분위기도 만만치 않았다. 2006년에는 클로징파티를 아침 6시에 마치라는 요구가 들어왔다. 아침 8시면 다음날 면허를 써서 클럽 재개장을 할 수 있었는데도 말이다. Johannes와 Sven이 내놓은 해결책은 5천 명의 사람들에게 자동차공원으로 가라고 하는 것이었다. 두 시간 동안 Sven의 디제잉을 자동차 라디오로 방송하고, 먹고 마실 것을 무료로 나눠줬다. 그러다 8시가 되면 다시 Luciano, Richie, Ricardo가 공연을 시작했다. 2007년에는 Amnesia가 한 달 동안 영업정지를 당하는 바람에 오프닝파티 72시간 전에 프로덕션 전체를 길 건너 Privilege로 옮겨야 했다. Sven과 그의 팀은 이비자에서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영향력을 자랑스러워하지만 그들을 통해 이비자에서 처음으로 레지던시를 하고 그들이 이비자에 소개시켜줬던 몇몇 DJ들이 독립하거나 가끔은 불화를 일으키며 갈라져나가 경쟁파티를 시작하는 것에 대해서는 분명 아쉬워한다. 그가 말한다. “내 새끼들이 다 커서 자기만의 길을 걸어가고 싶어 하는 것을 늘 지켜봐 왔어. 그들 중에는 사이가 나빠진 경우도 있어. 어떤 애들은 너무 무례했거든. 제대로 작별인사도 하지 않거나, 끝이 안 좋았지.”


이비자가 유명해지는 동안 Sven은 더 많은 계획과 더 큰 꿈을 추진시켜나갔다. 2004년에는 프랑크푸르트에 1,500명을 수용하는 전용 클럽을 지었다. 미슐랭 스타를 보유한 레스토랑이 딸린 이 건물은 테크노 역사상 가장 고급스럽다는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tINI & The Gang 파티로 이비자의 아이콘으로 등극하고 작년에는 Dana Ruh와 함께 Cocoon Ibiza 컴필레이션을 한 독일인 DJ tINI는 그 건물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되게 미래적이었어. 메인룸은 우주선 같았고.” Talida는 말한다. “그곳은 걸작이었어.” 그 클럽은 아쉽게도 2012년까지밖에 버티지 못했다. 결국 자금의 압박에 시달려 힙합과 상업파티로 타협하다가 마침내 파산했다. “최초의 파티 때와 똑 같은 상황이 벌어진 거지. 사람들은 그 안에 들어가서는 그 공간이 자기들을 위해 지어졌다는 사실을 믿질 못했어. ‘여기 앉아도 된다고? 이거 만져도 돼?’ 이러면서. 너무 심하게 좋았던 것 같아.” 이 클럽이 문을 닫는다는 것은 곧 Sven이 이 클럽의 그날그날의 운영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타협은 없어." - Sven Väth


다행히 Cocoon의 다른 영역들은 번창했다. 2000년에는 Sven이 직접 믹싱한 ‘The Sound Of The First Season’과 ‘Cocoon Compilation A’로 Cocoon Recordings를 시작했다. 그때부터 레이블은 눈부시게 성장해서 환상적인 정규 컴필레이션의 출로뿐 아니라 신인을 발굴하는 플랫폼의 역할까지 감당하게 되었다. Sven이 말한다. “이건 내 레이블이야. 그래서 이렇게 말했지. ‘타협은 없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거야.’ Ricardo Tobar 같은 신인과 계약하는 게 얼마나 짜릿하고 만족스러운지 몰라. 그의 앨범 [‘Collection’]은 작년 베스트로 손꼽혔지.”


Cocoon Recordings는 광범위한 일렉트로닉뮤직과 다양한 관점을 가지고 있는 DJ들을 소개한다. Adam Beyer는 이런 이론을 가지고 있다. “최고의 단어는 ‘유기적’이라는 거야. 어떤 여정을 말하는 거지. 모든 트랙이 처음과 끝, 멜로디와 감성을 가지고 있잖아. 다른 레이블들에 비해 좀 더 라이브 잼이지. Sven이 디제잉을 하는 방식에도 닿아있는 것 같아. Sven은 노래 전체를 플레이하기 좋아해. 음악이 스스로 말하게끔 하는 거, 그게 그의 방식이야. Richie Hawtin도 동의한다. “Sven은 늘 스토리가 있는 음악을 지지해왔어. 내러티브가 있고, 사람들을 기쁨과 멜로디로 충만한 심도 있는 여행에 데려가는 음악 말이야. Sven의 모든 셋과 Cocoon에서 발매한 음악에 이런 특징이 살아있어.” Ilario는 레이블이 주는 자유를 마음껏 누리고 있다. “내가 트랙작업을 해서 레이블 매니저인 Edgar에게 보내면 그가 Sven과 같이 음악을 들어보고 발매를 할지 안 할지 결정해. [나한테 뭘 고치라고 이야기하지 않아]… 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돼. 보통은 리믹서들까지도 선택할 수도 있어. 그게 나한테는 굉장히 중요해.”





다시 2016년으로 돌아와서, 전세계에 팔을 뻗치고 있는 Cocoon 제국시대다. Talida의 후임으로 2009년 겨울/2010년 봄 시즌에 Sven의 전속대리인을 맡은 Maurizio Schmitz가 말한다. “이벤트부서에서 말하길 행사 건수와 그 영역의 다양성으로 보건대 행사 측면에서는 올해가 가장 강력하다고 하더라고요. 올해에 리즈에서 제 8회 Cocoon in the Park를 했고, 베를린의 Watergate와 Tomorrowland 같은 레지던시도 했어요. 최근에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도 Cocoon을 했고요. 도쿄의 Womb을 비롯해 유럽에서 두바이, 호주, 남아메리카를 포함해 전세계 페스티벌 무대에 레지던시를 맡고 있죠. Sónar에서 Cocoon 이벤트를 하고 스페인에서도 공연 두 건이 잡혀 있어. 이탈리아에서도 엄청 강력하죠. 영국에는 Studio 338을 가지고 있어요. Fabric과 Electric Brixton도 했고요. 아프리카 빼고 모든 대륙에 우리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어요.” 그렇게 행복한 사람들의 수도 늘고, 파티도 늘고, Cocoon의 철학을 공유하는 아티스트들과 DJ들을 위한 플랫폼도 더욱 커지고 있다. 그렇다면 그 철학이란 게 과연 뭘까? Cocoon을 20년 동안 지탱시킨 건 과연 뭘까?


Luciano가 말한다. “결국 음악이지. 결국 Sven이고, 결국 공유와 사랑, 체험이야. 결국 음악의 장르, 그리고 음악적 철학이지.”


Josh Wink가 말한다. “고치(cocoon)는 생물을 에워싸는 동시에 성장시키고 발전시키는 보호막이잖아. Cocoon과 Sven의 철학도 그런 것 같아. 공생하며 특별한 음악적 유대와 경험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비슷한 생각으로 모인 집단을 아우르고 보호하는 브랜드라는 거지.”


"Cocoon은 라이프스타일이야." - Maurizio Schmitz


Maurizio가 말한다. “내가 볼 때 Cocoon은 라이프스타일이야. Cocoon은 특정한 플랫폼이야. 특정한 가능성이지. 누구든지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곳이야. 에이전시를 통해서 온 아티스트일수도 있고, Cocoon 직원일 수도 있어. 대부분은 Cocoon 파티에 오는 사람들이고. 우리는 사람들이 자신을 표현하고, 자유를 누리고, 이 체험을 삶으로 가져가기 원해.”


Johannes가 말한다. “Sven이 Cocoon에 가지고 있는 철학은 누구든지 자기만의 변신과정을 만들어낼 수 있는 플랫폼을 마련하는 거야. Sven이 내게 준 기회가 없었다면 나는 아직도 독일 어디 정육점에서 일하고 있었을 거야. 여러 젊은 아티스트들도 마찬가지야. Sven은 우리에게 창조성을 발휘하고 우리만의 변신을 할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해줬어.”


물론 마지막으로 그 주인공의 말이 빠질 수 없다. Sven이 설명한다. “우리가 하는 일은 우리의 진심과 열정에서 나오는 거야. 다들 그걸 알고 있어. 그 원동력은 언제나 음악이고. 왜냐하면 우리 모두 레이브를 좋아하고, 춤을 좋아하고, 정신 줄 놓는 걸 좋아하니까. 하지만 그러면서도 뭔가를 전달하고 싶은 거야. 우리가 뭘 할 수 있는지, 가장 최고의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거야.” 그러고선 그는 샴페인 잔을 비우더니 자신의 DJ 셋 ‘super-excited’으로 방금 그 말을 증명하기 위해 자리를 털고 일어나 부스로 향했다.


법인명 : 주식회사 비엔엘컬쳐스 / 신문사업등록번호 : 서울, 아03924 / 신문사업등록일 : 2015년 10월 06일 / 사업자등록번호 : 279-86-00099 / 법인등록번호 : 110111-5843580 / 대표이사 : 홍유석, 이순섭 / 발행인 : 장태환 / 편집인 : (주)비엔엘컬쳐스 / 발행소 : 서울시 강남구 삼성로 150, 107-105 / 발행일자 : 2016년 4월 4일 / 전화번호 : 070-7772-4444 / 대표이메일 : info@bnl-global.com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유석 / 특허등록번호 : 41-0375139-00-00 / 상표등록 제41-0375139호
Copyrights 2016 Mixmag Korea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