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저널리즘은 과장하는 버릇으로 악명 높지만 fabric 나이트클럽을 영구적으로 폐쇄 조치한다는 결정이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일렉트로닉뮤직 시설의 종말을 나타낸다는 것은 과장이 아니다. 9월 6일 화요일 여름 끝자락의 후텁지근한 저녁, 이즐링턴(Islington) 자치 의회는 마약이 연루된 사망사건에 대해 클럽에 유리한 무수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여섯 시간에 걸쳐 fabric의 면허를 철회했다. 보안이 철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런던시장 Sadiq Khan과 하원의원 Emily Thornbury 모두 fabric에게 우호적인 성명을 낸 바 있지만 클럽을 구명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댄스뮤직 소셜미디어는 믿기지 않는 결과에 충격을 받은 사람들의 목소리로 떠들썩하다. 엄중한 보안과 안전기준을 가지고 있던 fabric이 폐쇄된 마당에, 이제는 런던에, 아니 영국 전체에 그 어떤 클럽도 안전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지고 있다. 부동산 개발업자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는 지역에 위치한 경우라면 더더욱.
fabric(꼭 소문자 ‘f’를 쓴다)은 시작부터 독특한 외골수였다. 1999년, 슈퍼클럽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던 시절, 한때 도살업자들의 가게와 저장공간이었던 빅토리아 시대풍의 건물이 클럽으로 탈바꿈했다. 그 배후에는 레이브광이었던 런던의 기업가들 Keith Reilly와 Cameron Leslie였다. 두 사람은 이 프로젝트를 위해 몇 년 동안 공을 들였다. 거품에 지나치게 화려하고, 금방금방 사라지던 당대의 다른 클럽들과 달리, fabric은 늘 최고의 언더그라운드 댄스뮤직에 초점을 맞췄다. fabric의 자랑거리인 사운드시스템은 시간이 흐를수록 계속해서 개조와 개선을 거듭했다.
초기의 성공은 어느 정도는 레지던트 Craig Richards와 Lee Burridge (두 사람은 Tyrant 프로젝트를 함께 했다), Terry Francis가 플레이한 영리하고 모험적인 테크하우스 덕분이었다. 또한 영국 베이스뮤직의 발전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드럼앤베이스를 최대한 받쳐줘서 댄스플로어 밑에 깔린 400개의 변환기를 통해 엄청난 사운드를 내며 클러버들이 음악을 물리적으로 체험할 수 있었던 것도 한 몫 했다.
바이브 역시 중요했다. fabric은 웨어하우스 레이브에 가까웠다. 지나간 산업사회의 기본적인 벽돌건물은 적나라하고 땀내 났으며, 오로지 춤을 위한 공간이었다. 본질적으로 꾸밈과 가식이 없었다. 장식은 뒷전, 귀에 들리는 것에만 투자했다. Carl Craig, Robert Hood, Richie Hawtin 같은 디트로이트 테크노 원조들이 fabric을 그렇게 좋아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디트로이트 테크노 원조들이 fabric을 그렇게 좋아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2000년대 들어 그라임과 덥스텝이 잉태되면서 fabric 역시 독일계 칠레인 음향 모험가 Ricardo Villalobos를 지지했다. 그는 fabric의 사운드시스템을 사이키델릭한 미니멀리즘의 세계로 인도했다. 그런가 하면, 또 다른 날에는 에너지 넘치는 덥플레이트 셀렉션으로 도시의 단골 고객들과 눈을 휘둥그렇게 뜬 관광객들을 모두 열광시키는 DJ Hype나 Andy C를 보게 될 수도 있다. fabric에는 그 모든 것이 다 있었다.
본래 James Lavelle과 Ali B가 출연하는 광적인 매시업이었던 금요일 밤의 fabriclive는 영국 기반의 비트뮤직의 광범위한 단면으로 발전했다. 그 동안 WetYourSelf! 크루는 2009년부터 믹스드/게이와 일요일 밤 클러빙에 대한 모든 클리셰를 거부하는 스마트한 주말 세션을 제공했다. fabriclive는 2001년부터 성공적인 믹스 CD 시리즈로 발전했고(헷갈리지만 동명의 fabric 믹스 시리즈도 있다), 연계된 Houndstooth 레이블은 최근 들어 Marquis Hawkes, 18+, Paul Woolford의 Special Request 프로젝트 등 아티스트들을 위한 디딤돌의 역할을 하고 있다. fabric의 서브베뉴인 Matter는 2008년에 O2에 문을 열었다가 제대로 성공하지 못하고 fabric의 자금력을 휘청하게 만든 뒤 2010년에 문을 닫았다. 하지만 Keith Reilly는 그에 굴하지 않았고, fabric은 잠깐의 위기를 잘 극복한 뒤 계속해서 전진했다.
fabric에서는 가장 앞서가는 클러빙 체험을 할 수 있다는 소문이 전세계적으로 돌았다. 2002년 2월, John Peel이 와서 플레이한 날 밤, 셋 막판에 크라우드 서핑을 한 기억은 Reilly가 굉장히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추억이다. 사실 Charterhouse Street 77A를 방문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Seth Troxler, Mala, Ivan Smagghe, the Chemical Brothers, Annie Mac, Skream, Big Narstie 등 수천 명의 아티스트들에게 흠뻑 빠진 채 밤의 열기에 휩싸였던 자기만의 추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조건은 단 하나, ‘치즈 금지’였다.
하지만 이제 다 끝났다. 덩달아 250명의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의회의 결정 후, fabric은 다음과 같은 성명을 냈다. “fabric을 폐쇄시키는 것은 마약문제에 대한 해답이 아니다. 우리 같은 클럽들은 그러한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번 조치는 런던의 야간경제의 미래를 위협하는 선례를 남기는 것이다.” 정말 그렇다. fabric은 지난 8월 그 문제가 심각하게 불거지기까지 17년 동안 수용인원 2,500명의 대형클럽에서도 개인이 존중 받을 수 있고 별볼일 없는 싸구려가 아니라 최고의 음악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fabric은 온갖 역경에도 불구하고 귀와 마음을 정화시키는 음악과 밤새 지속되는 쾌락주의를 즐기며 레이브 시대의 흥분과 가치를 고수했다. 파티와 유행을 만들어냈다. 이제 악랄한 언론플레이 덕분에 좋은 시절은 다 갔다. 우리 모두는 대체 누구를 우리의 대표로 세운 것인지, 누구에게 힘을 실어준 것인지 다시 한 번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다.
fabric은 죽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헛소리. 레이브는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