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피쳐스에서는 2024년 12월 29일 WeSA Thila Ground에서 열린 Mixmag Korea 오프라인 리스닝·토크 세션 ≪작업실을 나온 음악가들≫ 현장에서 Xin Seha & Mogwaa, HWI & Choi Jongbin, CIFIKA & UMAKA & Nancy Boy 총 세 팀과 나눈 대화를 요약했습니다. 이날 세 팀의 아티스트들은 2024년 발매한 훌륭한 정규 앨범과 그간의 눈부신 활약에서 비롯된 작업 과정과 음악가로서의 삶을 음악 팬들에게 생생하게 전했습니다.
Moderator: 박민천
신세하 X 모과
Q. 신세하에게
겁이란 무엇인가요?
신세하: 음원 사이트에 재밌는 댓글을 하나 읽었어요. “신세하는 왜 이렇게
겁이 많을까?” 제가 쓰는 겁은
불안정함에서 불안들, 그것
때문에 생기는 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사실 모든 일이
안정되게 흘러갈 순 없잖아요. 저는 기질상 그런 불안들을
쉽게 떨쳐내는게 어렵더라고요. 제가 표현하는
매체가 음악이다 보니
가사를 쓰고 음성을
남겼을 때, 이것들을 음악 안에
녹여냈을 때,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았을 때
겁을 끄집어내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뭐랄까요, 대면한다고 해야
할까, 용기가 좀
생기는 느낌, 멀리 떼어놓고 떨어져서 보면
괜찮아지더라고요.
예전에는 그것을 표현하는데서 그쳤다면 이번
앨범에서는 그것들은
어떻게 해보려는 시도를 담고 있어요. “겁을 먹는다”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 앨범에서 말그대로 겁을 그냥
먹어서 소화시켜버리는 그런
내용도 있고 겁을
그냥 다 토해내서
개워내는 내용도 있어요. 겁을 전부 안아버리는 내용도 있고요.

Q. 인디펜던트로 앨범을 만들면서 얻을 수 있는 좋은 느낌들이 있다면요?
신세하: 인디펜던트는 아티스트가 모든 과정을 책임져야 하니까 좀 더
개인적인 음악, 좀 더 사적인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 같아요. 비용적으로 어려운 점이 있지만 모과 형도 그렇고
다행스럽게 이전에 함께 활동해온 동료들, 좋은 분들이
너무 큰 도움을
주셔서 앨범을 마무리를 할 수
있었어요.
모과: 다른 레이블에서도 음악을 많이
내봤지만 Magnetic Paws를
통해 발매한 [Translucent] 앨범은 공이 정말 많이 들어갔고 시간도
많이 들어갔고
그만큼 마음도 많이
가니까 제거가 아니면
정말 억울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이 앨범에 대한 모든 것을 온전히 제가
갖고 싶어서 일부러 레이블을
만들기도 했어요. 인디펜던트 앨범은 어렵지만 오직 나만의 음악을 길러내는 일이 정말 중요한 시대에서 한 번 정도, 혹은 꾸준히 도전을 해보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Q. 앨범이라는 집합을 구성할 때 가장 중요시 여기는 것이 무엇인가요?
모과: 저 같은 경우에는
멈춰야 할 때를
아는 것, 이만큼
했으면은 다 했다, 그냥 여기까지가
딱 적당한 것
같다라는 결정을 내리는
일이 가장 어려우면서도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휘 X 최종빈
Q. 앨범 제작의 단서가 된 “미래를 파괴하는 일상에 대한 절망감”이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을 하자는 결심으로 바뀌어 간 계기는 무엇인가요?
휘: 이것은 생각보다 싱거운데요. 내가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는 한 건강하게 70세, 80세, 90세까지는
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면 지금부터 한
몇십 년이 남은
거잖아요. 지금부터 절망을 하면
앞으로 수십년 정도를 계속
절망 속에서 살아야
하는데 그건 너무
길단 말이죠. 남은 삶을 조금 더
실용적으로 사용하려면 이런
감정에 오랫동안 빠져
있어서는 안 되겠다라는
생각을 우선 했고요. 그 일상을 죄책감 속에서
살아가지 않으려면 뭐라도
하면서, 세상을 바꿔 나갈
수 있는 다른
행동들을 하면서 살아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서서히 바뀌어
나갔던 것 같아요.
개인적인 상황들이랑 연결
지어서 생각을 해보면
우울감이 절정에 달했을
시기,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는 때가 있었어요. 지금은 박쥐단지라는
단체와 함께 하고 있고 사운드서플라이서비스라는
레이블을 만나서 교류도 하고
있지만 한 2년 전만
해도 이런 음악
친구들이 하나도 없었거든요. 작업을 하면서 너무
고독했어요. 그 당시에는 이
고립감의 이유를 잘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
서서히 깨달은 거예요. 내가 스스로 이제
고립을 자처하고 있었구나.
이
앨범의 주제에 가닿을
수 있게 한
결심은 그런 깨달음
뒤에 스스로 마음을
바꾸면서 동료들을 만들어나가던 시기와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있어요. 지난 한 1~2년 동안은 주변 동료들을 만나고
다니면서 내가 인간을
정말 혐오했던 시기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사람은 사람
없이 못 사는
게 맞구나 하는
것을 깨달은 시간이었어요.

Q. 앨범 제작에서
레이블 설립자와 A&R로서 최종빈님은 어떤 역할을
했나요?
최종빈: 메이저 레이블의 A&R 포지션이랑은 다르게 이 앨범에서 한 역할은 앨범을 같이 만드는 동료로서 할 수 있는 일들을 했다고 생각해요. 음악에 대한 피드백이 필요하다든가, 디자인에 대한 얘기를 한다든가, 포괄적으로 앨범에 대해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나누는 역할을 했던 것 같아요. 이벤트에 대해서도 아이디어도 열심히 낸 편인 것 같고요.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그런 일들을 했습니다. 메일로 휘님한테 데모를 받은게 협업의 시작이었던 것 같은데 그때는 다섯 트랙 정도가 있었어요. 그걸 듣고 반 년에서 일 년 동안 앨범을 어떻게 만들지에 대해서 얘기했었죠.
처음에는 다섯 곡을 메일로 보내주셨는데, 그중 하나가 유독 마음에 강하게 들어왔어요. ‘기도문’이라는 곡이었는데, 지금 완성된 앨범과 형태도 거의 같았어요.
솔직히 말하면 나머지 네 곡은 제 취향과는 조금 달랐지만, ‘기도문’은 정말 좋았습니다. 휘님을 처음 카페에서 만나 앨범 이야기를 나누던 시기, 개인적으로도 무기력함에 깊이 빠져 있었는데, 그때 처음 ‘기도문’을 듣고 울었던 기억이 나요.
아마도 휘라는 아티스트와 이 앨범을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이 나에게 어떤 구원의 의미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이후 다른 곡들은 휘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런 방향은 어떨까, 저런 느낌은 어떨까 괜한 사족을 붙이며 의견을 많이 주고받았던 것 같아요.

Q. ‘Humanly Possible’의 가장 핵심적인 주제, 인간으로서 뮤지션으로서 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요?
휘: 지난 달 (2024년 12월 29일 행사 기준) 까지만 해도
음악가로서 음악으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면 된다라고
생각 하며 살아왔는데
국내 정치 상황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면서 혼란스러운
시간을 오래 보내게 되었습니다. 음악에 내 생각을
담고 내 생각을
담은 음악이 무언가를
바꿔내고, 그런 희망을
몰래 품었는데 그런 희망감 같은
것들이 크게 흔들린 시기였거든요. 내 일상을 완전히
뒤바꿔 버릴 수
있을 만한 초현실적인
상황, 사건이 일어난 후 내가
지금 영위하고 있는
일상이 얼마나 안온하고 사사로운가를 생각하며 내가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일, 내가 변화시키고
싶은 문제들에 대해
더 공개적으로 얘기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사람들과 연대하고 이런
것들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일들이 작업을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것, 세상에서 벌어지는 문제에 계속 관심을 갖고 고민하는 것의 중요성을 크게 느꼈습니다.

씨피카 X 우마카 X 낸시보이
Q.
이번 앨범에서 드러난 음악의 진정성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 해주세요.
씨피카: 아무래도 보여지는게 중요한 직업이기도 하고 뮤비, 프로필, 무대 의상, 메이크업이나 컨셉을 음악과 함께 병행해왔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음악적으로 모자른
부분을 외적인 내용으로 채우고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이런 주제로 낸시와 우마카랑
대화를 많이 나눴죠. 나 목소리 잘 낼 수 있는데, 사람들한테 내 목소리 더 들려줄 수
있는, 내 가사 더 잘 들려줄 수 있는 음악
만들고 싶다고. 나 혼자서는 그런 음악 만들기 쉽지
않으니까 도와달라고, 그렇게 솔직하고 진지한 대화를 나누면서
만든 앨범이에요.
우마카: 일단 얘기를 정말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씨피카의 오랜
팬이었고 직접 연락이 와서 작업 제의를 받게 되었는데 과연 내가 이들과 편하게 작업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죠. 막상 다
같이 만나서 대화를 나누어 봤는데 편하게 함께할 수
있는 너무 좋은
사람들이었어요. 그런 환경 속에서
편하게 만든 앨범이라는 사실이 인상
깊었던 프로젝트에요. 제가 만든
기타 소스를 낸시형이 많이 가공하기도 했는데 그것에
대한 거부감이 전혀 없었고 오히려 이 사람이 뭘 하든 상관 없겠구나 하는 신뢰가 많이
쌓였었던 것 같아요.

Q. 이번 앨범에서 드러난 공동체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낸시보이: 아티스트의 사적인 모습을 많이 드러낼수록
좋은 앨범이라 생각해요. 솔직한 모습이 드러나지 않으면 앨범의
전달력에 있어서 아쉬움이 남을수있다 생각했어요 공동체라는 것도 저희 셋이 서로한테 솔직해야 성립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이 사람이 불편해하지는 않는지.,지금 내고
있는 소리가 편한방식인지 등 작업을 함께 하면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부분이 있거든요. 앨범 안에서 저희만의 솔직함을 만들어 두고 듣는 사람들에게도 내면의 솔직함으로 더 들어갈수있는 용기가 조금이라도
전달될수있길 바랬어요 제가 이 앨범 안에서 생각한 공동체는 서로 같은 방향을 바라볼수있도록 솔직하게 교류하고 이해하는 방식을 가지고 작업했던 것 같습니다.
씨피카: 사회에서 예술가들을 대할 때 가끔은 너무 매몰차다는 느낌을
받아요. 그래서 이번 앨범 안에서는 음악가들끼리 단단한 연결을 만들고 우리끼리 서로 존중하는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었어요. 이런 공동체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네요. TV에 출연하지 않지만 정말
좋은 뮤지션들이 많이 있고, 그들이 서로
소통하고 있고, 그렇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협업도 하고 멋진
작품들이 만들어지고 있는데 드러나지 않으면, 혹은 금전적으로
풍족한 사람이 아니라면 사랑받기가
존중받기가 참 쉽지 않은 것 같았어요. 그런 사랑이, 그런 존중이
그리웠던 것 같아요.

Q. A&R이나 회사의 원조 없이 독립적으로 만든 정규 앨범이에요. 인디펜던트로 앨범을 만들면서 얻을 수 있는 좋은 느낌들이 있다면요?
우마카: 아까
전에 공동체 얘기를 이어 가보자면 낸시
형이 프로듀싱을 전담했고 AFM Laboratory의 엠마님, 트왱, 동진님께서 믹스, 마스터등 테크니컬적인 부분을 해결하고 있을 때
저랑 피카는 앨범 아트를 직접 만들거나 혹은 앨범에 필요한 것들을 바로바로 작업하고 있었거든요. 우리 팀에 필요한 것을 직접 하고 있다라는 느낌이 굉장히 좋았어요.
씨피카: 이번 앨범
아트는 영민이(우마카)랑 제가 손으로 직접
그려서 디자인을 했는데
만약 저희가
회사 소속이었다면 직접 그린 디자인을 앨범
아트로
만드는 과정도
불가능 했을 것 같아요.

Q. 성수에서 있었던 라이브 공연이 씨피카의 나레이션 “음악 하는 사람이 음악만 해서 되는게 아니더라구요”으로 마무리
됩니다.
낸시보이: 사실 이 문장이 나옴과 동시에 공연이 끝나는 걸 의도하지는 않았어요 앨범에서는 씨피카에게 전달받은 과거의 생각과 목소리가
담긴 이 인터뷰를 곡안에 녹이고자 하는 의도는
확실히 있었지만요 ‘Totem’이라는 곡 에서 샘플링한 인터뷰 속
당시의 씨피카는 제가 잘 모르는 사람이였지만 어린 씨피카의 패기와 순수함이 제게 큰 울림이 있었습니다.그 감정을 느끼고 소리로 풀어내는 과정
속에서 사용한 악기는 가상악기 플룻 샘플인데 소리를 샘플러 키보드에 넣어서 건반을 치듯
연주 하게 되었어요. 기존 풀룻의 음역을 완전히 벗어났고 그 소리가 가지고있는 하모닉스에서 굉장히 따뜻하고 꿈같이 느껴져서 사용했습니다 그 위에 누나의 인터뷰샘플들은
하나의 애트모스피어라고 할까요, 랜덤한 무드를 만드는 소리들로 사용하고
싶어서 약간의 변형을 준뒤에 사용했습니다 말씀해주신 샘플 속 문장에 있어서의
저는 요즘 음악이 제 인생의 전부라고 확언하지 않아도 괜찮다 생각하며 반드시 어떤 사람이 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음악을 하겠다는 건 오로지 제 선택이었고 음악으로 돈을 못 벌면 다른 걸로 돈을 벌면 되고, 음악을 좋아하면 또 음악을 하면 되고, 그렇게 가볍게 생각하고 있는 편이에요. 사실은 더 오래 작곡활동을 지속하기위한
마인드 컨트롤을 해나가는것 같습니다 음악이라는게 너무 제 목을 조르지 않을정도로.
우마카: 저는 이 문장에서 크게
두 가지, 생업에
관련된 부분, 그리고 교양
혹은 인풋에 대한 부분을 생각했어요. 미대를
나오고 회사 생활을 하다가 지금은 아주 좋은 사람들과
함께 음악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회사 생활하면서도 항상 마음의 짐이 있었거든요,
언젠가 하리라 생각했는데 도대체
언제 시작하는
거지라는 불안감도 컸었고요. 제가 존경했던 음악가들은 어떤 환경에 처해있든 그 사람의 삶
속에서 계속 소리를
내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소리가 솔직함을 가지고 있을 때 저는 크게 힘을
얻었던 것 같고요. 생업으로서의 음악은 아직 먼 일이지만
이 문장이 마냥
슬픈 문장은 아니에요. 한 편으로는 이 생활이 정말 재미있게 흘러갈 수도 있겠다라는 기대도 생겨나거든요. 저는 음악을 들을 때 소리와
음만 듣지 않아요. 이 뮤지션이 어떻게 살아왔었는지, 이 뮤지션이 어디서 어떻게 소리를 내고 있었는지 그 상황도 함께 보기 때문에 이 문장이
굉장히 뜻 깊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