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담은 음악가 김태원의 전자음악적 자아로 음악의 가치를 끈기 있게 탐색하고 그 정수를 추출해내는 역량이 돋보이는 한국의 프로듀서이자 DJ, 라이브 퍼포먼스 뮤지션입니다. 이번 인터뷰는 고담과 함께 한국 댄스 뮤직 커뮤니티의 가치와 방향성, 그리고 독립성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한 내용을 요약했습니다.
Interviewer: 박민천
Q, 고담이라는 아티스트를 스스로 설명한다면?
프레스에는 김태원의 전자음악적 자아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고담은 수많은 음악들 중에서도 전자 음악을 학습하고 있을 때의 자아에요. 경계를 두고 전자음악에 대한 인풋만으로 음악을 만들고요. 고담이라는 아티스트 이름에 그 이상의 정보를 담지 않겠다는 의미도 있어요. 폴더를 나누는 방식과도 비슷해요. 딱 그 폴더 안에 있는 내용만을 바탕으로 작업을 하는 프로젝트에요.
스스로 붙인 일종의 `호`의 의미도 있어요. ‘옛 고’ 자에 ‘이야기 담’ 자. 저는 누군가의 예전 이야기를 듣는 걸 정말 좋아했어요. 학교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개인적인 예전 이야기를 자주 하면 그게 항상 너무 재밌었거든요. 시간이 지나면 내 이야기도 계속 옛날 이야기가 될테고 그 옛날 이야기는 더 옛날 이야기가 되겠죠. 옛날이라는 개념은 특정 시점이 없어요. 10년 전도 옛날이고 습관처럼 ‘옛날엔 그랬어~’라고 얘기하는 것처럼 옛날이라고 생각하는 개념도 현재 진행형이라고 생각해요. 저한테 옛날은 그런 방식으로 존재해요.
Q. 고담이라는 프로젝트가 전자음악적 자아에 가깝다면 인간 김태원의 음악적 자아도 여러 갈래로 나눠지는 것 같습니다. 고담 이외의 음악적 자아에 대해서도 설명 해주세요.
‘메가맨’이라는 게임이 있어요. 이 게임은 상황에 따라 다른 파츠를 껴야 하는 게임이에요. 주인공이 목적에 따라 상황에 따라서 다른 장비를 착용해야 해요. 그 외의 다양한 게임에서도 캐릭터를 육성할 때도 목적에 따라서 빌드가 달라지는데 어떤 방식을 선택하든 모두가 내 캐릭터라는 점이 흥미롭죠. 어떤 장비를 선택하든 어떤 빌드를 선택하든 다 내가 키운 캐릭터이고 내 시간을 들인 거란 말이죠.
그렇게 고담과 도일도시는 자연스럽게 생겨났어요. 집에서 피아노를 무심코 치다가, 멜로디나 화성적인 아이디어가 평소보다 훨씬 마음에 들고, 어쿠스틱한 편곡이 잘 떠오르는 날이면 그건 도일도시가 되는 날이에요. 반대로, 기술적인 고민이 생겨 질문을 하게 되거나, 드럼머신과 신디사이저로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는 날은 고담이 되는 거죠.
Q. 다시 ‘옛 고’ 자와 ‘이야기 담’, 고담의 이야기로 돌아가보겠습니다. 옛 것의 가치를 굉장히 중요시 여기는 프로듀서라는 생각이 듭니다.
트렌드와 상관없이 한번 꽂힌 장르는 진득하게 탐구하고 음악을 만들게 되더라고요. 장르 음악을 끈덕지게 파고 드는 방식을 누군가는 트렌드에 발 맞추지 못한다며 패셔너블하지 않다고 볼 수도 있겠죠. 하지만 이 방식으로 음악을 하는 사람이 드문 것도 사실이거든요. 아까 전에도 얘기했지만 옛 것에 대한 시점도 이름을 고르듯이 바뀝니다.
20년 전으로 가볼까, 30년 전으로 생각해 볼까, 40년 전으로 생각해 볼까 이런 식으로 옛 것에 대한 시점을 바꿀 수 있어요. 현재의 결과를 얻기 위해서 과학자들이 과거의 논문을 열정적으로 뒤지는 것처럼 음악가도 과거의 음악에서 정수를 추출해 낼 수 있어요. 옛 것은 현재 진행형이라고 생각해요. 옛날 것 중에 분명히 구닥다리처럼 느껴지는 음악도 있지만 분명히 현재 진행형인 음악들이 있다고 믿어요. 옛날 것들은 그것이 발전해 온 개념을 생각해 보면 그 당시 선택할 수 있었던 최선의 결과일 것이고 그 때의 최신 기술이에요. 내가 만약 30년 전에 저 악기를 썼다면 나는 어떻게 썼을까라는 질문이 들면 80년대 빈티지 악기를 직접 사서 만져보곤 했어요.
고무동력기의 원리를 누구나 알잖아요. 이미 엄청 옛날부터 있었어요. 드론이 나오는 세상에 고무동력기나 글라이드를 왜 날리고 있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자체가 굉장히 재미있는 일이거든요. 과학의 날이라는 건 어쩌면 그런 이유에서 존재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초중고 교육과정에서 해가 지날 수록 노하우가 생기잖아요? 날개를 이렇게 하면 좀 더 멀리 가더라 하는 얘기가 팁처럼 돌아요. 분명히 정답은 정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파헤치는데서 오는 재미가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음악을 하고 있는 이유와 비슷하다고도 느껴지고요.
화성 체계, 신디사이저 이론, DAW 활용 방법은 우리 시대에 이미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지식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옛 것에는 항상 새로움이 숨어있다는 생각을 해요. 새롭게 발견하면서 내가 새로 가지를 뻗는 느낌.
Q. DJ로서 활동을 할 때와 라이브 퍼포먼스 아티스트로 활동할 때의 접근 방식이 다른 것 같습니다. 다른 형식으로 활동을 할 때 각자 우선순위가 있다면요?
디제이는 확실히 사람들이랑 호흡을 해야 하니까 제 라이브러리 안에서 플레이 하는게 좋아요. 트렌드도 중요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걸 들려줌으로써 사람들에게 내가 들려주는 음악이 좋다는 사실을 공감시키고 경험시키는 것도 중요하고요. 그렇게 하려면 리스너에게 스토리텔링을 통한 학습이 필요해요. 사람들한테 처음부터 무작정 제가 들려주는 음악이 좋은 거라고 강요할 수 없어요. 사람들과 호흡 하면서 조금씩 스며들게 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죠. Electro를 예로 들면 처음에는 마이애미 계열이나 멜로딕 한 것부터 플레이하는 것처럼요. 아쉽게도 한국에서 Electro는 대중적인 음악이 아니에요. 그래서 사람들이 조금 더 이해하기 편하게끔, 흐름을 따라올 수 있는 음악으로 틀다가 제가 정말 좋아하는 Electro로 넘어가면 사람들이 대부분 좋아해주는 걸 느껴요. 빌드업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처음부터 내가 멋지다고 생각하는 음악을 일방적으로 들려주는 것은 어려운 일이에요. 배려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리스너들에게 배려를 많이 하려고 노력해요.
라이브 퍼포먼스 같은 경우에 옵션이 많으면 생각이 많아져요. 그러면 스트레스가 늘어나고 즐거움이 사라져요. 결국에는 Elektron으로만 라이브셋을 하자라고 마음을 굳히게 됐고 최근에 했던 라이브는 전부 일렉트론 장비만 사용했어요.

Q. 바이닐 디제잉과 디지털 디제잉 사이에서 일어나는 논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바이닐과 디지털을 선택하는 일은 디제이의 다양한 취향에 따라 달라진다 생각해요. 바이닐과 디지털을 플레이하는 DJ들 사이에 일종의 *무의식적인 권력서사가 생기는 일은 경계하고 싶어요. 현재의 음악은 90%가 디지털로 만들어지고있어요. 프로듀서의 입장에서는 바이닐이 음질적으로 손해가 발생할 때가 더 많아요. 다이나믹 레인지도 줄어들기 때문에 객관적으로만 놓고 봤을 때 바이닐이 반드시 효율적이라고만은 할 수 없어요. 그저 음악을 들려주기위한 하나의 매체일 뿐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매체자체는 위계가 없고 다만 그걸 다루는 사람의 태도가 위계를 만들죠.
하지만 내가 프로듀서로서 이만큼 정리해 놓은 사운드가 하이가 깎이고 노이즈 플로우가 올라와 버렸다고 하면 클럽에서 용납이 잘 안 되는 부분들도 있죠. ‘바이닐 플레잉이 나은가요, 디지털 플레잉이 나은가요?’라는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누군가는 압박감을 느끼고 있다는 뜻이고 그 내용에 대해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고 싶어요. 특정 매체로 음악을 플레이한다는 사실에 특별하다고 느낄 필요도 없고요. 물론 저도 여전히 바이닐을 사긴 합니다.
Q. 한국 댄스 뮤직 커뮤니티의 독립성을 굉장히 중요시 여긴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가끔 을지로의 변화와 한국 천주교의 성장 과정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처음엔 외부에서 시작되었지만, 결국 자생적으로 성장하며 독자적인 정체성을 형성했어요. 한국 천주교는 서구 선교사가 전파한 것이 아니라, 조선 지식인들이 스스로 신앙을 받아들이고 평신도들에 의한 공동체를 형성하며 발전했어요. 외부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신앙을 키워낸 사례예요.
을지로도 마찬가지예요. 전통적인 인쇄소와 철공소가 젠트리피케이션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고, 예술가들과 협업하며 새로운 문화 생태계를 만들어가고 있어요. 대기업이 주도한 변화가 아니라, 지역에서 직접 성장한 로컬 문화예요. 둘 다 외부에서 시작됐지만 그걸 받아들이는 방식이 독립적이고, 창의적이고, 자기화되었다는 점에서 닮아 있다고 느껴요. 해외 권위자나 기술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라, 그것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만의 방식으로 만들어가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아직 더 많은 데이터가 요구되는 사항이에요.
Q. 서울의 로컬 댄스뮤직 커뮤니티는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서울의 로컬 댄스 씬의 문화 보면, 처음에는 당연히 서구의 장르나 클럽 문화를 참고하고 영향을 받는 구조였어요. 테크노, 하우스, UK 개러지 같은 이름들이 기준처럼 작용했고, 그 흐름에 발을 맞추는 식의 움직임도 분명 있었죠. 근데 점점 보면, 그걸 단순히 복제하거나 정통으로 따르려는 흐름보다는 자기 식으로 느끼고, 어딘가 조금씩 틀고, 다시 조립하려는 움직임이 아주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고 믿어요. 예를 들어, 장르 간의 구분이 점점 느슨해지고, 파티에서 만들어지는 공간 분위기도 뭔가 정해진 공식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느낌이 있어요. 조금씩 어긋나는 혼종의 리듬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할까요.
이런 흐름을 볼 때 저는 비교적 최근에 알게된 호미 바바의 ‘모방의 전복’ 개념이 자주 떠올라요. 그는 단순히 모방하는 존재가 지배당하는 게 아니라, 그 모방이 어긋날 때, 오히려 기존 권력 구조에 작은 균열이 생긴다고 말해요. 지금 이 씬도 그런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의견이에요. 단순히 ‘수입된 문화’를 흡수하고 있는 게 아니라, 그 어딘가에서 계속 삐걱이고, 미끄러지고, 자기화되어 성장하고 있는 중이랄까요. 모방이라는 언어조차 자기 식으로 다시 발화하고 있다는 느낌이 있어요. 이런 흐름은 저 혼자 느끼는 게 아니라, 같이 움직이고 있는 동료들, 주변 아티스트들, 함께 밤을 보내는 DJ와 리스너들 사이에서 느껴지는 리듬이에요. 누군가가 이끌고, 누군가는 따라가는 게 아니라 서로의 감각이 서로를 지지하면서 만들어지는 침묵의 공간이라는 믿음이 있어요.
물론 이걸 뭔가 큰 흐름으로 단정하거나, 이미 뚜렷한 정체성이 형성됐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그보다는,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는 과정의 감각이 더 커요. 말로 딱 정리하긴 어렵지만,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룰 안에서 잘하고 있다는 느낌보다, 다르게 느끼고, 다르게 틀고 있다는 믿음, 그리고 그걸 함께 믿어주는 사람들이 옆에 있다는 확신 아닌 확신이 든달까요. 단순히 해외 아티스트를 데려오는 것에만 의지하기보다는, 느리더라도 지속 가능하게 자생해나갈 수 있는 힘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결국 로컬 씬의 가능성은 그 끈기와 감각, 그리고 함께하는 관계 안에서 살아나는 것 같아요.

Q, 커뮤니티 내에서 이루어지는 ‘평가주의적 태도’는 긍정적으로 작용하는지, 부정적으로 작용한다고 생각하는지도 궁금합니다.
우리나라는 굉장히 상대적인것에 취약한 나라에요. 때로는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지나치다는 생각도 들고요. 자신의 위치와 타인의 위치를 자꾸 비교한다라는 느낌이요. 교육시스템이 평가하고 평가받는 일에 우리를 익숙하게 만들었고 지금은 일종의 ‘뒤틀린 문화’로 자리 잡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타인이 만든 음악과 플레이에 조금 관대해질 필요가 있어요. 자기 표현을 했을 뿐입니다. 좋았던 점이 있다면 어떤 점이 좋았는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이런 부분은 이렇게 개선할 수 있겠다는 친절한 피드백이 있다면 다음 작업이 얼마나 더 좋아질까요. 친절하게 말할 수 있는 부분이에요. 그렇게 말하는 방법을 모르고 평가적인 태도를 쉽게 갖는 것은 어느 정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사실 평가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해도 만드는 사람들이 눈치를 볼 필요가 전혀 없어요. 눈치를 보지 마라고 강요할 수는 없겠지만 자기 표현의 일부인 음악으로 과하게 평가받는 일은 부당하다고 생각해요. 상대적으로 현재의 내가 부족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반대로 더 잘하는 자기 모습을 미래에 기대해 볼 수 있잖아요. 그 모습에 더 설레는 마음을 갖는게 중요하고 서로 좋은 결과물을 내기까지 기다려주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 또한 매년 알아가는 과정을 거쳐가는 중이에요. 끝이 없는 것이니까요. 모두가 그런 설레임 속에서, 그런 기다림의 축복 속에서 계속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음악을 만드는 일이 무조건 힘들어야 한다고 생각치도 않습니다. 가뜩이나 다른 현실적인 고민들도 많을텐데 내가 만들고 표현하는 것 자체 마저도 그렇게 힘들고 부정당할 필요가 없어요.
본인이 객관적으로 부족하다라는 걸 알고 있고 정말로 피드백이 필요할 때 답변을 해 줄 수 있지만 상대방이 물어보기 전까진 입 밖으로 얘기하지 않는 편이에요. 좋은 것만 들으려 노력해요. 노력해서 허점을 찾아내는 일은 탐정이나 형사가 취조실에서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다들 조금 내려놓고 부족하지만 좋은 면만 보려고 하고, 그 가능성을 지켜봐주고 기다려 줬으면 해요.
Q. 고담이 생각하는 좋은 음악은?
테크놀로지가 신경 쓰이지 않을 정도로 좋은 음악들.
Q. 그런 음악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철저하게 자기 걸 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모방도 하고 영향도 받겠지만 그것 또한 철저하게 다 자기 거에요. 그 부분에 대해서도 굉장히 정직하고 관대할 필요도 있고요. 내가 영향받은 게 이거라면 철저하게 영향받은 대로도 한번 해보고 거기서 비트는 작업도 해보고 그 다음에 섞어도 보고 철저하게 영향받은 두 개의 영역을 섞어 보기도 하고 아예 배제를 한 작업을 해보기도 하고요. 그 중간 과정에서 나만의 채취가 남은 캐릭터가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모두가 ‘혼종’이었으면 좋겠어요. 그 캐릭터는 고유한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것을 기반으로 만들어지는 자기 자신에 대해 부끄럽지 않아 했으면 좋겠어요. 본인이 영향받고 좋아했던 거에 대해서 떳떳하게 쭉 가면 좋겠어요. 그게 설령 트렌드에 뒤처지고 가끔씩은 촌스러워 보일지라도요.
Q. 차가운 테크니션으로 보이기 vs 따뜻한 격려를 해주는 뮤지션
따뜻한 격려를 해주는 뮤지션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