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도감은 밴드 실리카겔의 구성원 김춘추의 솔로 프로젝트로 한 명의 뮤지션이 혼자서 뚝딱뚝딱 어디까지 할 수 있을 것인가를 자유롭게 실험한 작업물을 들려준다. 놀이도감의 음악은 아기자기하고 장난스러우면서도 때로는 이상하고 기괴한 요소들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과감한 매력이 돋보인다. 2019년 [Playbook] EP를 기점으로 시작된 놀이도감의 여정은 2020년 정규 1집 [숨은 그림], 2022년 [SPIRIT#2] EP 발매와 활발한 라이브 무대로 새로운 음악에 대한 팬들의 호기심을 언제나 자극하고 있다. Mixmag Korea는 이번 인터뷰에서 놀이도감의 작업 프로세스와 기타리스트이자 보컬리스트, 프로듀서이자 엔지니어, 편곡자로 활동하고 있는 놀이도감의 다재다능함을 조명했다.
Editor: 박민천
Q. 밴드 레코딩 작업보다 혼자 작업할 때 느끼는 편안함이 있을 것 같습니다. 놀이도감 이름처럼 놀이를 하듯이 음악을 만들 때 느끼는 편안함도 있구요. 반면 물리적으로 혼자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하는 작업이 비교적 외롭기도 할 것 같습니다. 놀이도감은 편안함과 외로움 중 어디에 더 가까운 작업인가요?
편안함에 압도적으로 기울어져 있다고 생각되네요. 저는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을 무척 좋아하고, 다양한 시행착오를 통해 저만의 데이터를 쌓는 것을 즐기기 때문에 혼자 작업하는 시간은 저에게 정말 소중하고 귀한 양식이 됩니다.
Q. 유튜브에 업로드되어 있는 “무지개 (Rainbow)” 뮤직비디오에 “살짝 미쳐버린 음악 선생님 같음,,,,”이라는 코멘트가 굉장히 인상 깊었습니다. 놀이도감은 이 댓글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뮤직비디오 감독인 웅희와 처음부터 논의했던 방향이, 미묘하게 기분 나쁜 무언가를 꾸준히 제공하는 비디오를 만들자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와 같은 댓글에 저(또는 저희)는 꽤 만족스럽다고 생각합니다.
Q. 싱어송라이터로서 직접 가사를 쓰고 노래를 부를 때 느끼는 기쁨을 공유해주세요!
노래를 부르긴 하지만, 노래를 부를 때의 기쁨보다는 제가 생각하는 ‘좋은 것’의 정수가 놀이도감을 통해 나오기 때문에 연주하면서 듣는 저의 즐거움과, 같이 연주하는 멤버들을 보는 것, 그리고 그것을 즐겁게 듣고 있는 관객들의 세 가지 에너지가 융합되면서 나오는 기쁨을 즐기는 것 같네요.
Q. 모든 소스를 하드웨어에서 가지고 오는지, 소프트웨어 플러그인도 활용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작업을 할 때 주로 사용하는 셋업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모두 적극적으로 사용합니다만, 악기에 있어서는 가능한 실제 악기를 사용하려고 노력합니다. 이펙트 등도 가능한 한 소스로서 함께 레코딩합니다. 믹싱하면서 사용되는 다양한 프로세서들이나 추가적인 이펙팅(에코나 더블러 계열 등)에서는 소프트웨어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되, 최대한 해상도가 높고(oversampling 지원 등), 투명한 플러그인 위주로 사용합니다. 주로 클린한 컷과 피크 조정이 주된 작업이지만, Pro Tools의 HEAT를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Crane Song의 Dave Hill 선생님의 하드웨어와 개발 철학을 무척 공감해서 실제 장비들도 많고, HEAT 또한 그의 작품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후의 모든 ‘톤’은 믹서와 하드웨어에서 거의 진행합니다. 그중엔 비교적 클린한 계열(Crane Song, Summit Audio)도 있고, 색채가 강한 계열(ELI, Maag, 1176, Chandler, Retro)도 많습니다. 정리하면, 녹음 단계에서 원하는 사운드를 만들어서 잘 받고, ITB에서 최소한의 보정을 한 후 필요한 소스에 아웃보드 컬러를 입힌다고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Q. 전자음악에 익숙한 한 명의 리스너로서 놀이도감의 드럼이 귀엽고 털털한 매력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여전히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드럼은 제가 작업하는 음악에서 중요도 1순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은데, 그렇기에 역시나 가장 큰 문제라고 할 수 있겠네요. 다만 장애물로서의 문제라기보다는, 음악에 작용하는 다수의 변수 중 가장 영향력 있는 문제라는 생각으로 접근해서, 오히려 확실히 방향성이 잡힌 드럼을 만드는 과정이 즐겁습니다. 그 이후로는 여러 가지가 쉽게 해결되어서 어쩌면 가장 즐거운 문제라고도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Q. 거의 모든 트랙에 사용된 고역대의 앙증맞은 신스 아르페지오 멜로디가 굉장히 매력적입니다.
너무 자유로워지면 인터뷰가 안 끝날 것 같아서 조금 정리해 보자면, 제가 좋아하는 대부분의 소스는 굉장히 포커스된 성분의 소리들로 이루어져 있어요. 플랫와운드가 걸린 베이스라든지, 앰프를 통한 일렉기타라든지. 필요 이상의 정보량을 제한하는 것들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기본 섹션에서는 중음 위주의 짧은 서스테인을 사용하는 것을 즐기는데, 특정 포인트에서 발생하는 고음의 긴 소리들이 음악의 확장감과 해상도, 이미지에 굉장히 큰 영향을 주며 앞선 파트와 대비감을 상쾌하게 주는 역할을 합니다. 특정 구간에서의 신디사이저 라인 소스를 포인트로 즐겨 사용하는 경향이 있는 듯합니다. 물론 반대로 앰프를 활용해 의도적으로 신디사이저의 영역대를 필터링하는 것도, 신디사이저 특유의 비현실적인 엔벨로프 톤을 부담 없이 활용하기에 참 좋습니다.
Q. 기타뿐만 아니라 신디사이저를 굉장히 잘 다루고 사랑하시는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놀이도감의 작업에 신디사이저가 어떻게 활용되었는지도 궁금합니다.
저는 제가 갖고 있는 것들 ‘만’ 사용하는 것을 좋아해요. 그래서 그 무기고를 저의 취향에 맞는 엄선된 악기들로 채우기 위한 정보와 수집이 매시간 제가 하고 있는 노력입니다. 제가 사용할 수 있을 법하고 궁금한 악기들의 스펙트럼 중 기타 페달 다음으로 넓은 것이 신디사이저다 보니, 사용법을 익히며 다양한 악기의 구조와 특징들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게 제가 가진 무기들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넣었습니다. 또한, 어쿠스틱 또는 일렉트릭 악기가 구현할 수 없는 독특한 톤을 만들어내는 악기들이기 때문에, 사운드적 스펙트럼을 넓히기 위한 가장 쉽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신디사이저를 활용하는 것 같네요.
Q. [playbook] EP에 들어간 수록곡들이 Andy Shauf, Jessica Pratt, Connan Mockasin 같은 아티스트들을 즐겨 들으며 만들어졌다는 인터뷰를 읽었습니다. 이 아티스트들의 음악이 싸이키델릭하고 진지한 성향이 짙은 반면 놀이도감의 음악은 그것보다는 아기자기하고 장난스러운 면이 더 도드라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언급해주신 아티스트들과는 결이 다른 이상함이나 어딘가 불편한 느낌이 있었어요. 뮤직비디오에서도 이 이상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어요.
솔직히 말하면, 어쩌면 아무런 의미도 없는 클립과 영상들입니다. 또는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은 듯한 스토리의 비디오일 수도 있고요. 극단적으로 말하면 음악을 유튜브에 올리기 위한 매개체라고까지 생각한 비디오들도 있고, 반대로 음악이 보조적인 역할로서 비디오를 위한 자리를 내어주는 방향으로의 비디오도 있습니다. 그래서 불편하고 이상한 느낌이 드는 걸 수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 뭐가 됐든 큰 의미는 없어요. 단지 그것들이 주는 인상에만 집중할 뿐입니다.
Q. 놀이도감의 작업이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역시 기타 솔로는 숨겨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출신 성분이 그래서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제일 잘하는 것 중 하나가 그거라서. 감사합니다!
Q. 언뜻 들었을 때 편하게 들리지만 굉장히 이상하고 과감한 시도들이 트랙 곳곳에서 눈에 띄었어요. 가령, ’SPIRIT #2’의 “Shoe Shelf (HELLO VER)”은 그로테스크하기도 했고, ‘숨은 그림’의 수록곡 “숨은 그림”에 난데없이 별안간 들어오는 자일로폰 퍼커션도 그렇고. 뭔가 밝고 귀여운 아동용 애니메이션이 알고 보니 성인들을 위한 암시가 숨어 있다더라 느낌이랄까요.
음악에 여러 가지 요소가 있겠지만 저는 ‘사운드’에 정말 큰 비중을 두고 음악을 판단하는 것 같습니다. 문학적인 요소들로 음악이 가려지는 것을 꽤 경계하고는 하는데, 그러다 보니 음과 연주와 톤들만으로 어떻게 좋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 보니 다소 장난스럽기도 하고, 좀 찝찝하거나 기괴한 것들을 즐겨 집어넣는 것 같습니다. (그런 것이 소화될 만한 음악이 있다면 말이죠). 특징적이고 인상적인 ‘대비’를 통해 사람들이 그 소리에 반응하게끔요.
Q. 놀이도감의 작업실은 어떤 소리든 만들어낼 수 있는 공간이라고 들었어요. 지금까지 들려주었던 아기자기하고 미니멀한 인스트루멘탈과 완전히 다른 결의 음악도 기대해볼 수 있을까요?
네, 저도 드라이한 70’s 팝 포크 록 같은 것들을 기본적으로 좋아하긴 하는데, 반대로 얼기설기 다 헤집어 놓은 것 같은 사운드들도 너무 좋아하고, 조악한 것들도 좀 좋아하는 편이라서 이거저거 해보고 있는 중입니다. 새로운 음악을 만들 시기가 되었습니다.
Q. 앨범을 발매하는 일에는 항상 부담과 스트레스가 따라옵니다. 놀이도감 이름처럼 음악을 즐거운 놀이로 여길 만큼 좋아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음반을 만드는 건 뮤지션에게 항상 엄청난 메인 퀘스트이자, 굉장한 경험치 보상을 주는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항상 긴장도 되고 기대도 되고, 재미도 있고, 힘도 들지만, 뭐랄까, 그냥 안 할 수가 없어요. 더우면 땀을 흘려야 하듯이 뭔가 자연스럽게 하게 되어버리는 이벤트라는 생각이 드네요. 음악은 놀이를 초월해서 일상이자 취미이자 그냥 자연스러운 활동이 되어버린 지 오래인 것 같아요. 저는 음악 외에는 사회적으로 크게 사용 가치가 많은 사람은 아니라서 존경하는 수많은 세계의 음악 선배님들처럼 힘 닿는 데까지 오래오래 음악 만드는 걸 하고 싶습니다. 부담과 스트레스는 게임을 할 때도 느껴지는지라 어쩌면 크게 중요한 요소는 아닐 수도 있습니다.
Q. 놀이도감의 앞으로의 공연 활동, 그리고 음반 활동에 대해 팬들에게 힌트를 남겨주세요!
2024 한 해 동안 현재까지의 역사 중 가장 적극적인 활동을 보냈는데요. 굉장히 흥미롭고 즐거웠습니다. 라이브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신곡들이 좀 쌓이고 있어서 역시나 음반에 대한 준비를 길게 잡고 하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놀이도감의 음악 즐겁게 들어주시고, 조만간 무대에서 만나요!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