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르키(SHARKI)는 유재하 경연음악대회 33회 대상 수상자 황다정과 기타리스트, 프로듀서 김한진으로 구성된 팀으로 주목받고 있는 신예 아티스트 팀이다. SHARKI는 일렉트로닉 사운드와 어쿠스틱 사운드가 가볍게 어우러진 김한진의 인스트루멘탈 프로덕션 위로 떠다니는 황다정의 우아한 보컬이 청자들의 감각을 일깨워주는 묘한 마력을 지니고 있다. 믹스맥 코리아는 지난 6월 [Lifetime] EP를 발매한 샤르키의 음악관과 앨범 작업기를 기록했다.
Editor: 최승인
Q. 한 분씩 간단한 인사와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김한진(이하 ‘진’): 저는 샤르키(SHARKI)에서 프로듀서를 맡고 있는 김한진이라고 합니다. 곡도 쓰고 기타도 치고 있습니다.
황다정(이하 ‘정’): 저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샤르키의 보컬 황다정입니다.
Q. 다정 님 가사를 보니 책이랑 영화를 즐겨보시는 것 같았어요. 요즘 재밌게 보신 책이나 영화가 있으신지.
정: 저는 장르를 가리지 않고 독서를 하는 편인데, 요즘은 다른 뮤지션들의 책을 좀 많이 봤어요.릭 루빈(Rick Rubin)의 책을 한진이랑 같이 읽었어요. 조니 미첼(Joni Mitchell)의 평전도 봤고요.
Q. 다정 님의 솔로 싱글에서 독특한 무드가 느껴졌어요.
정: 제가 라디오헤드(Radiohead)를 엄청 좋아해요. 제임스 블레이크(James Blake)랑 비틀즈(The Beatles)도 좋아하고요. 이런 취향이 있어서 그런 무드가 묻어나오는 것 같아요.
Q. 어느 시기의 라디오헤드와 제임스 블레이크의 작품들을 가장 좋아하시나요.
정: 제임스 블레이크는 항상 좋아했어요. 어떤 앨범이든 간에 흥미로웠죠. 피아노도 되게 잘 치잖아요? 홀리한 목소리도 좋아하고요. 그리고 라디오헤드는 [In Rainbows]를 가장 좋아해요. 멜로디의 흐름이나 무드도 그렇고 전반적으로 다 좋아해요. 사람 마음의 깊은 곳을 건드리는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개인적으로 와닿는 것 같습니다.
Q. 샤르키 첫 번째 EP [Aggro Nip]에 수록된 뮤직비디오가 영화 <스왈로우>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어요. 어떤 영화인지 소개해 줄 수 있으신가요.
정: 일단 주인공은 시댁에 돈이 많고, 남편도 좋은 사람이에요. 그런데 주인공을 더 들여다보면, 자신의 욕구나 욕망을 풀어내지 못하고 외로움과 고독 속에 살고 있다는 부분이 지속적으로 드러나요. 그러다가 뭔가를 계속 삼키고 싶은 정신병에 걸리는데, 어떤 우여곡절을 겪어 그 상황에서 벗어나는지에 대한 내용이에요.
그래서 “Movie”의 가사를 쓸 때, 어떤 내용으로 풀어내야 사운드의 다이나믹한 흐름을 살릴 수 있을까 많이 고민했죠. 그때 영감을 받으려고 영화도 많이 보고 여러 가지 활동을 했는데, <스왈로우>를 보고 나서 “이런 식으로 풀어내면 음악의 흐름을 표현할 수 있겠다.”라고 생각했어요. 갇혀 있는 여성이 자기 욕망을 실현하지 못하는 영화잖아요? 자유롭지 못한 사람의 욕망을 “내가 너를 없애고 너의 삶을 갖겠다.”라고 말하는 두 여성의 소통으로 풀어봤습니다.
Q. 보통 음악 만들 때 멜로디 만들고 가사를 붙이시나요.
정: 네. 때마다 다르지만 보통 코드랑 멜로디가 먼저 나오는 것 같아요.
Q. 멜로디의 흐름을 만들 때 고려하시는 부분이 있으신지.
정: 일단은 듣기 좋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Movie”는 멜로디의 흐름보다 사운드의 흐름이 너무 독특했죠. 그걸 살리려고 많이 노력했는데, 다른 거 쓸 때는 그냥 듣기 좋고 지루하지 않으면 되는 것 같아요.
Q. 해외 음악은 제임스 블레이크나 라디오 헤드를 많이 좋아한다고 하셨는데, 한국 가요도 많이 들으시는 편인가요.
정: 한국 가요도 많이 듣는 편이에요. 한국 가요를 디깅하던 때가 있었는데, 자우림에 꽂혀서 많이 들었어요. 지금은 그때보다 덜 듣는 것 같아요,
Q. 김윤아 님께 영향을 많이 받으셨는지.
정: 맞아요. 노래 들으면서 많이 울었어요. 자우림 음악 들으면서 많이 위로를 받았거든요. 그래서 저도 듣는 사람을 위로할 수 있는 가사를 쓰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제가 진짜 사랑하는 노래가 김윤아의 개인 앨범인 [타인의 고통]에 수록된 “꿈”이라는 노래예요. [Goodbye, grief.]에 들어간 “이카루스”라는 곡도 좋아하고요. 제가 그 노래를 스무 살 무렵에 들었는데, “나는 내가 스물이 되면 빛나는 태양과 같이 찬란하게 타오르는 줄 알았고”라는 가사를 들으면서 엄청 눈물 나더라고요.
Q. 가사에서 독특한 색깔이 보이는데, 가사 쓰실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나요?
정: 일단 기승전결이 있게 풀어내는 걸 좋아해요. 저는 한 세계관을 만들거나 스토리가 명확한 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스토리를 보면서 그림이 그려지고, 모두가 가사를 통해 느낄 수 있도록 쓰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서 어떤 그림을 하나 상상하면서 쓸 때가 많아요. 아니면 엄청 깊은 개인적인 이야기도 하죠.
Q. 스토리 라인을 먼저 그려놓고 가사를 쓰시는지.
정: 스토리라인을 먼저 정해놓고 가사를 쓰는건 맞아요. 그런데 머리에서 바로 꺼내기 보다는 산문으로 쭉 써놓고 나서 운문으로 바꾸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니까 어떤 상황을 써놓은 줄글을 가사로 바꾸는 거죠. 그래서 평소에 글도 자주 쓰는 편이에요.
Q. EP [Aggro Nip] 만들 때 구현하고 싶은 스토리텔링 방식이나 사운드가 있었나요?
정: 사운드는 한진이가 많이 만져서 제가 자세히 이야기하기는 힘들 것 같아요. 저는 사운드보다 이야기에 많이 신경 썼죠. 일단 첫 EP때는 되게 진지해서 그런 얘기들을 많이 했어요. 제가 원래 철학에도 관심이 많고 깊은 사유를 좋아하는 편이어서 그런 것들을 풀어내보고 싶었었어요. 마음대로 하는 첫 앨범이니까요. 그런데 점점 심각한 얘기를 쓰지 않게 되는 것 같아요.
Q. 두 번째 EP는 전작에 비해 부드럽고 편안한 인상을 받았어요. 음악적 태도의 변화때문인지 삶 자체의 변화때문인지 궁금합니다.
정: 삶이 바뀌어서 그런 것 같아요. 첫 번째 EP를 작업한 건 제가 막 대학에 들어간 시점이에요. 그전까지 계속 입시를 하고 있었다보니까 뭔가 닫혀있었죠. 놀지도 못하고, 시간도 마음대로 쓰던 시절이라 내면에 많이 집중한 시기였던 것 같아요. 그 이후로는 맨날 놀러 다녔더니 제 시선이 외부 세계를 향하면서 사람이 더 풍부해진 것 같아요. 그때보다 오히려 단순해지더라고요.
Q. 가사를 쓰면서 산문을 쓴 뒤에 운문으로 바꾼다고 하셨잖아요? 어떤 식으로 다듬어 가시는지 궁금합니다.
정: 예를 들어 “Lifetime”의 가사를 쓸 때는 삶에 대한 생각을 먼저 썼어요. 오늘을 즐기고 사랑하는 것에 대한 생각을 일기처럼 쓰고, 거기서 노래 가사나 후킹이 될 것 같은 문장들을 멜로디에 맞춰서 뽑아냈죠. 그렇다 보니 멜로디와 음가랑 잘 맞는 가사를 뽑아내는 과정에서 되게 오랜 시간을 써요. 한 문장에서 3주 동안 고민한 적도 있고요.
Q. 너무 딥하게 파고들어 가면 힘들지 않나요.
정: 힘들었죠. 그런데 그만큼 욕심이 났어요.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싶었거든요. “this weather`s only once in a lifetime” 이라는 가사가 있잖아요? 이 가사가 원래 “life time”이라는 한 단어만 있고 앞부분이 없었어요. 음절 수를 동그라미로 시각화한 다음에 사전이랑 라임 맞추는 프로그램을 맨날 들여다보면서 작업했죠.
진: 진짜 너무 고생했어요.
Q. 싱글 [Onion] 도 양파의 속성에서 시작해서 재미있는 메시지로 끌고 가는 부분이 인상 깊었어요. 어떤 방식의 스토리텔링을 의도하셨나요.
정: 제가 손미 시인의 “양파 공동체”라는 시를 되게 좋아해요. 읽고나서 펑펑 울었던 기억이 있는데, 이 우주를 양파에 비유해서 “이 세상을 모르겠고, 이 세상에 속한 나도 모르겠고, 이 세상의 열쇠도 모르겠다.”라는 내용의 시예요. 싱글을 작업하면서 “Onion”이라는 단어와 함께 자연스럽게 그 시가 떠오르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시니까 그런 식으로 풀어봐야겠다 싶어서 간 거죠.
Q. 싱글 [비나이다]도 콘셉트가 재미있었는데, 어떤 식으로 가사를 쓰려고 하셨나요.
정: [비나이다]는 전래동화 <해님 달님>에서 어머니가 호랑이한테 이제 잡아먹히잖아요? 그걸 한 번 꼬았어요. 어머니가 잡아먹힐 때 희생하잖아요. 그래서 어머니가 희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싶어서 “다 드릴 테니까 나를 살려주세요. 이렇게 비나이다.”라는 식의 콘셉트죠.
Q. 이런 식으로 한 번 비틀어서 표현하는 게 평소 언어습관에도 반영되는 편인가요.
정: 글쎄요. 평소에 말할 때는 딱히 그러지 않는 것 같아요. 그래도 어떤 표현을 할 때 비유하거나 한번 틀어보는 것들을 되게 좋아하는 편이에요. 재미있잖아요.
Q. 기존 관점에서 벗어나서 사물이나 현상을 바라보는 것 같았어요. 이런 취향이 어디서 비롯된 것 같으신지.
정: 사실 잘 모르겠어요. 그냥 타고난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좀 더 새로운 걸 찾아서 기존에 있던 걸 뒤집어보고싶은 욕구죠. 그런데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런 걸 갖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해요. 저는 그냥 재밌는 걸 좋아하니까, 제가 재밌는 걸 하는 거죠.
Q. [Lifetime]은 한글 가사 없이 영어로만 가사를 쓰셨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정: 저희가 팀의 브랜딩에 대한 이슈가 있었어요. [Onion] 끝낸 다음 EP를 준비하는 동안 우리 팀을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가야 할지 고민했거든요. 저희가 해외로 나가고 싶다는 소망이 있었는데, 그러려면 일단 영어 가사를 써야 하니까 시도해 봤죠.
진: 원래 [비나이다]인지 [Onion] 준비할 때부터 고민하던 부분이었어요. 그때는 일단 한글로 하기로 했거든요.
정: 당시에 [Onion]이랑 [비나이다]는 가사가 거의 나온 상태였거든요. 그다음 곡부터 실천했죠. 그렇게 방향을 정하고 처음 나온 게 [Iris]였어요.
Q. 비주얼라이징도 방향을 선회한 느낌이 있어요.
정: 맞아요. 앨범 자켓이 사진으로 바뀌었죠. EP부터는 그렇게 가기로 했어요.
Q. 다정 님의 개인 작업물은 샤르키 할 때랑 방향이 다른 것 같아요. 개인 작업물은 어떤 방향으로 풀어나가려고 하셨는지.
정: 샤르키는 팀의 이미지나 컨셉이 명확해요. 세련된 음악을 해야 하고, 유치한 음악을 하면 안 되는 암묵적인 룰이 있거든요. 그런데 제 음악은 제 마음대로 할 수 있잖아요? 하고 싶은 음악을 하면서도 좀 더 개인적인 이야기를 풀어내고 싶으니까 한글로 적은거죠.
Q. 한진 님께 질문을 드리자면요. 스노전(Snozern)님이나 신선혜 님 앨범에 기타 세션으로 참여하셨던데, 기타는 언제부터 치시기 시작했고, 어떤 음악가나 앨범에 영향을 받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진: 초등학교 5학년 때 친구 처음으로 기타를 치기 시작했어요. 친구 따라서 배우러 갔다가 취미로 시작했죠. 그러다가 고등학교 2~3학년 즈음 입시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저는 어렸을 때 한국노래는 잘 안 듣고 팝을 들었어요. 특히 재즈랑 어쿠스틱 기타 음악을 좋아했죠. 특히 노라 존스(Norah Jones)를 좋아했어요. 제가 중학교 때 처음 헤드폰을 샀는데, 당시 한창 노라 존스의 “Painter Song”이라는 노래를 좋아했죠. 그래서 어쿠스틱 음악이나 재즈를 들었던 기억이 나요.
Q. 대학교 들어갔을 때는 어떤 음악을 많이 들으셨는지.
진: 제가 입시 준비할 때는 재즈 기타를 많이 공부해서 재즈 쪽으로 갔어요. 그런데 기타리스트도 좋았지만, 혼 플레이어(Horn player, 브라스 연주자)들도 좋아했어요. 그래서 밥 레이놀즈(Bob Reynolds)나 존 콜트레인(John Coltrane) 같은 사람들 음악을 많이 들었죠. 그러다가 대학 들어와서 소울 펑크(Soul funk)나 팝 음악도 많이 접하게 됐어요.
Q. 한진 님은 좋은 연주자가 되는 게 꿈이셨는지.
진: 워낙 재즈를 좋아해서 원래는 기타리스트가 꿈이었어요. 그런데 세계 최고의 연주자가 되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저는 제가 재미있는 걸 하는 게 좋다는 주의인데, 곡 쓰는 게 재미있어서 입시 준비할 때부터 계속 곡을 써왔거든요. 대학 들어온 뒤로는 곡 쓰는 게 더 재미있었고요. 그래서 19년도부터는 곡을 많이 썼던 것 같아요.
Q. 소울 펑크 쪽에서 전자음악 쪽으로 방향을 돌린 건 언제부터인가요.
진: 한국에 한창 톰 미쉬(Tom Misch) 열풍이 불던 때가 있었잖아요? 그때 저도 톰 미쉬의 음악을 많이 들었는데, 톰 미쉬랑 자주 작업하던 조던 라케이(Jordan Rakei)라는 프로듀서 음악이 너무 좋은 거예요. 제가 미디 공부를 코로나 터졌을 때 시작했는데, 마침 조던 라케이도 투어를 못 나가니까 패트리온에 강의를 올리더라고요.
재밌겠다 싶어서 그 영상 보면서 조금씩 공부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전자음악 쪽으로 조금씩 스며들지 않았나 싶어요. 항상 어디로 갈지 정해놓는 게 아니라 그냥 “재미있어 보이는데?” 싶으면 그쪽으로 쑥 가는 느낌이 있죠.
Q. 조던 라케이가 하는 음악은 그때까지 듣던 음악과 어법이 다르게 느껴졌을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어떤 부분이 달랐던 것 같으세요.
진: 일단 조던 라케이는 스펙트럼이 엄청 넓고, 음악도 기발한 방식으로 만들어요. 아이디어가 넘치다 보니까 음악 레이어링하는 방법이나 프로듀싱하는 방법이 되게 재미있어요. 그런 어법들이 좀 저한테 잘 맞고 제가 좋아하는 부분이었어요. 저는 정말 사소한 부분때문에 곡이 바뀌는 디테일한 부분을 좋아하거든요. 조던 라케이도 세심한 아티스트다 보니까 그런 부분에서 영감을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Q. 첫 EP [Aggro Nip]에서는 어떤 사운드를 구현하고 싶으셨는지. 아니면 뭔가 시도해 보고 싶었던 그림이 있나요.
진: 아무래도 제 정체성이 기타리스트잖아요? 그래서 곡에 웬만하면 기타를 많이 넣으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보통 곡 쓸 때 드럼을 먼저 놓고 그 위에 기타로 잼 하면서 만들거든요? [Aggro Nip]도 그렇게 시작했던 것 같아요.
Q. [Aggro Nip]에 여러 세션 분들이 참여하셨잖아요? 잼 느낌을 잘 살리고 싶었던 건가요.
진: 네, 맞아요. [Aggro Nip]에서는 조금 라이브 느낌을 살리고 싶어서 드럼도 리얼 드럼이랑 샘플을 섞어서 썼죠. 베이스도 그루브를 좀 많이 넣고 싶어서 리얼베이스를 썼고요. 아무래도 네오 소울 장르라서 더 그런 부분에 신경 썼던 것 같아요.
Q. 첫 EP까지만 해도 지금이랑 팀의 정체성이 다른 방향이었던 거잖아요? 한진 님은 어떤 방향으로 음악을 하고 싶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진: 그때는 누나랑 팀을 결성한 지 얼마 안 돼서 서로 맞춰가고 알아가던 시기였거든요. 그래서 각자 플레이리스트도 공유하고, 음악도 많이 듣고, 싸우기도 하고 만들었던 음악을 없애버리는 경우도 많았어요. 그렇다 보니 그 시절에 만든 EP는 서로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았던 앨범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하고 싶은 거를 최대한 담자.”고 해서 만들었던 앨범이죠
저는 목적지가 있다기보다는 제 머릿속에 있는 걸 청각적으로 형상화 시킨 거에 가까워요. 정확히 뭘 하고 싶어서 그 방향으로 만들었다기 보다는 조각가가 돌덩이를 봤을 때 본인 기준에서 보이는 형상대로 조각하는 것에 가깝죠. 그런 크리에이팅 과정 자체가 너무 즐거웠거든요.
Q. 김한진(kimhanjin)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음악을 들어보면 조던 라케이에서 조금 더 들어간 부류의 음악을 하시는 것 같았어요. 이런 음악을 본격적으로 디깅한 시기는 언제인가요.
진: 곡을 만들면서도 꾸준히 디깅은 했지만 본격적으로 파고든 건 재작년부터였던 것 같아요. 대학 졸업하고 나서부터죠. 제가 원래 시퀀서로 로직을 썼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에이블톤이랑 같이 쓰고 있어요. 에이블톤이 너무 재미있어서 탐구하다 보니까 샘플도 많이 쓰게 됐죠. 그때부터 전자음악도 많이 접하게 된 것 같아요.
지금도 많이 찾아보고 있긴 하지만 이제 보노보(Bonobo)나 플로팅 포인츠(Floating Points) 같은 영국 아티스트를 많이 디깅했고, 재밌어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때 누나랑 같이 놀면서 클럽을 몇 번 갔었는데 너무 재밌는 거예요.
Q. 어떤 클럽에 가셨는지.
진: 제일 재밌었던 데가 이태원 코끼리였어요. 테크노도 그렇고 비트 뮤직도 너무 재밌었거든요. 제가 어쿠스틱도 좋아하고 기타리스트다 보니까 그런 강점을 활용할 수 있는 것들도 많이 썼었던 것 같아요. 그때 클럽에서 아이폰으로 녹음했던 클럽 사운드가 라이프 타임에 들어가 있기도 해요.
Q. 테크노 좋아하신다고 하셨잖아요? 테크노나 댄스 음악에서 어떤 매력을 느끼셨는지.
진: 일단 댄스 음악은 사운드적으로 할 수 있는 게 너무 많아서 재미있었어요. 탐구할 수 있는 영역이 많다 보니까 만들면서 재미있었거든요. 그리고 만들면서 흥이 붙다 보니까 거의 춤추면서 만들죠. 작업하다가 너무 좋아서 한 번 춤추다가 루프 슬쩍 들어보고 다시 작업 들어가고 막 그러거든요. 그렇게 만드는 과정 자체가 재밌는 것 같아요. 어쿠스틱 음악은 조금 많은 집중력을 요구하거든요. 머리로 생각을 많이 해야 하는데, 댄스 음악은 프로젝트에 펼쳐놓고 작업하다 보니까 집중력이 덜 소모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사운드 적으로도 아무 데나 갈 수 있다보니까 그런 실험도 재밌는 것 같고요.
Q. 어쿠스틱은 딱 그 순간에 집중해서 연주해야 하니까, 아무래도 그런 면이 있긴 하겠네요.
진: 그런 것 같아요. 영감이 왔을 때 한 번에 연주를 많이 해놔야 하는 것도 있고, 그 순간을 잡아내야 하는 부분이 있잖아요. 연주 실력도 너무 중요한 부분이고요. 그런데 댄스 음악은 생각했던 것들을 프로젝트에 다 벌려놓고, 뭔가 떠오르면 바꿨다가 아니다 싶으면 실행 취소하면 되잖아요? 그래서 실험할 수 있는 여지가 더 많은 것 같아요. 그런 점이 매력인 것 같고요.
Q. 김한진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첫 싱글[Pirouette]은 어떤 걸 시도해 보고 싶으셨는지.
진: 싱글의 가제가 아르페지오(Arpeggio)였어요. 아르페지오를 활용하는 곡 콘셉트였거든요. 총 2개의 아르페지오 파트가 있는데, 그걸 얹어서 빌드업하는 거죠. 그러다가 중간에 아르페지오랑 리듬이 바뀌거든요? 바뀌는 부분을 기점으로 파트를 나눠서 썼던 것 같아요.
Q. [mushroom]은 리듬 구성이나 빌드업이 재밌었어요. 이 곡도 조금 설명해 줄 수 있으신가요.
진: 맞아요. 드럼을 제가 썼는데, 공간적인 걸 많이 고려해서 썼어요. 제가 음악을 만들 때 주제를 정해놓고 만들거든요? 이 곡은 공간을 다채롭게 써보고 싶어서 만들었어요.
Q. 공간이라는 개념이 어떤 건 지 궁금합니다.
진: 거리감이라고 해야 할까요? 리버브나 음 사이의 거리 같은 부분이죠. 림샷 사운드를 들어보면 공간이 느껴지잖아요? 좀 더 자세히 들어보면 어떤 건 가깝고 어떤 건 멀어요. 그 부분은 제가 상상해서 연속적으로 나오는 림샷 소리의 거리를 벌리고, 소리들이 각자 다른 위상에서 나오도록 실험해 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식으로 주제를 정해서 드럼을 만들고, 빌드업한 거죠. 곡 만든 시기가 딱 여름이거든요? 근데 여름에 코끼리에서 테크노 파티가 있어서 가보고, 테크노를 접목해 봐야겠다고 생각해서 만든 곡이에요.
Q. 좋습니다. 사운드 디자인이나 음향학적 요소도 접목한 느낌이네요.
진: 그때도 공부를 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녹아들어 간 것 같아요.
Q. 그렇다면 [Lifetime] EP는 사운드적으로 이전 앨범과 어떻게 다르게 접근하려고 하셨는지.
진: 일단은 미니멀하게 가려고 했던 것 같아요. [Aggro Nip]은 레이어가 많고,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앨범이었어요. 반대로 [Lifetime]은 좀 더 단순하고 귀를 사로잡는 요소를 많이 쓰려고 노력했죠. 그러다 보니 간소화하려는 노력도 많이 했고, 가사가 잘 들리도록 보컬 소리가 잘 들리게 하는 부분에 초점을 뒀죠.
Q. 믹스를 직접 하시니까 음향학적인 부분에서도 신경을 많이 쓰셨겠어요.
진: 그렇죠. 제가 프로 믹싱 엔지니어는 아니지만, 믹싱까지가 최종 편곡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것까지 해야 곡을 완전히 컨트롤하고 완성된 작품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공간적인 부분이나 여러 샘플과 악기의 위치까지 전부 제가 생각을 토대로 나와줘야 하는 거죠.
Q. 그게 이번 EP에서 잘 드러난 것 같아요. 곡이 전반적으로 미니멀하지만 악기를 재미있게 배치해서 잘 들리게 만든 부분이 좋았거든요. 그걸 가지고 뭔가 그려지게끔 한 부분도 좋았고요. 그래서 믹싱에 대한 부분을 여쭤보고 싶었는데 직접 믹스를 하신다고 하니 이해가 되네요.
Q. [Lifetime]이라는 타이틀은 어디에서 비롯된 건지 궁금합니다.
정: “Lifetime”이라는 곡의 메시지 자체를 앨범의 주제로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정한 제목이에요.
Q. 그렇게 정한 건 언제쯤인가요.
정: 저희는 곡을 만들 때 하나씩 순서대로 만들지 않고, 아이디어를 다 벌려놓고 끌리는 대로 꺼내서 작업하거든요. [Lifetime] EP 작업할 때도 그랬어요.
[Aggro Nip]의 주제를 정할 때에는 사람들의 공감이나 청자에게 잘 전달될지 전혀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이번 앨범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주제로 앨범을 만들어보자고 생각했어요. 비틀즈의 “Let it be”를 떠올렸고, 라이프타임을 그런 결의 이야기로 완성한 거죠.
Q. [Iris]랑 [Race]는 앨범 커버를 3D 그래픽으로 하셨잖아요? 그때는 3D를 사용하신 이유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정: 저희가 함께하는 3D 아티스트가 있어요. 늘 저희 것을 작업해 주는 고마운 친구인데요. 싱글 “Onion”를 내기 전 회의를 하며, 많지 않은 예산으로 지속 가능한 형태가 무엇일까 고민해서 결정한 게 3D였어요. 그때부터 함께한 3D 아티스트분과 여전히 함께하고 있습니다.
앨범 자켓은 원래 제가 만들었어요. 그러다가 이번 앨범부터는 저희 프로필 사진 찍어주던 친구가 맡게됐죠. 앨범을 만들면서 브랜딩 회의를 한번 더 했는데, 사진 찍어주는 친구가 브랜딩에 대한 좋은 의견을 많이 내줬어요. 그러다가 앨범 자켓을 담당해 주는 걸로 결정했죠. 덕분에 이번 앨범 자켓은 이전보다 퀄리티가 좋아서 만족하고 있어요.
Q. 사진 촬영을 위해서 컨셉이나 기타 다른 부분에 대해서 얘기하신 부분이 있는지.
진: 미니멀하고 세련되게. 딱 두 가지 키워드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정: 그리고 톤을 조금 낮춘 것 같아요. 비주얼적으로 톤이 너무 막 중구난방이어서 이번부터는 완전히 톤 다운 해버렸죠. 앞으로는 이런 무거운 톤으로 계속 갈 것 같아요.
Q. 앨범 커버는 어디서 촬영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정: 사진해주는 친구가 너무 잘 찍어줘서 좋은 앨범 커버가 나온 것 같아요.
Q. 리릭 비디오랑 비하인드포토는 어디서 찍으셨는지.
정: 그것도 종로에서 찍었어요.
진: 하나은행 쪽 아닌가?
정: 리릭 비디오 촬영 스팟이 종로랑 영종도 두 곳이에요.
Q. 리릭 비디오 뒤쪽에 도로 같은 게 보이던데, 그게 대교인가요.
정: 바다 근처였으니까 대교 맞을 거예요.
진: 섬 들어가서 찍었던 기억이 나요.
Q. “Iris”의 초안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당시 꽂혀있던 사운드가 있으셨는지.
진: 당시 꽂혔있던 곡은 없는 것 같아요. 제가 어떤 곡이 마음에 들면, 곡 쓸 때 그 곡의 템포를 그대로 가져오는 경우가 있어요. 아마 “Iris”는 계속 실험하다가 어떤 곡을 듣고 템포랑 드럼을 비슷하게 가져온 다음에 기타로 잼 해서 만든 곡이에요. 레퍼런스는 잘 기억이 안나네요. 신디사이저로 코드 먼저 들고 베이스라인을 넣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3개 만들었더니 너무 좋더라고요. 신나서 다정 누나한테 가져갔더니 너무 좋다면서 빨리 해보자고 하더라고요. 그 곡은 처음부터 되게 마음에 들었던 것 같아요.
Q. “Iris”는 조금 팝스러운 접근인 것 같아요. 영국 전자음악에서 어떻게 팝까지 갔는지 기억이 나시는지.
진: 사실 뭔가 곡을 만들 때 장르적인 고민을 많이 하지 않아요. 그냥 제 머릿속에 있는 사운드를 구현하려고 하고 실험하는 거죠. 실험했을 때 너무 좋으면 그때 픽스해요. “Iris”의 신디사이저 사운드도 처음 만들었을 때 너무 좋아서 픽스했고, 베이스라인도 비슷한 방식으로 확정했던 것 같아요. 어디서부터 온 거라기보다는 제가 들어왔던 음악 안에서 나온 거죠.
Q. 다정 님은 “Iris”를 딱 듣고 어떤 느낌 받으셨나요.
정: “Iris”를 처음 들었을 때, 입에서 바로 멜로디가 나왔어요. 그 멜로디가 지금의 탑라인이죠. 그전에는 노래 위에 멜로디 불러놓으면 추가로 편곡이 필요했는데, “Iris”는 트랙 위에 멜로디만 딱 얹었더니 그 자체로 미니멀하고 좋았어요. “마음에 드는 것”의 기준이 1부터 100까지 있다면, 처음부터 최대치를 찍었던 곡입니다.
진: 그리고 “Iris”는 저희에게 특별한 곡이예요. 샤르키의 사운드 정체성을 확고하게 해줬거든요.
정: “앞으로 이렇게 가자.”라고 했었어요.
Q. 가사는 어떤 과정을 거쳐서 나온 건가요?
정: 첫 영어 가사라서 힘들었어요. 처음 가이드를 줄 때 “May I do”랑 “Way too long”이라는 말을 되게 많이 했어요. 그걸 이용해서 글을 써야 하는데, 어떻게 쓸지 도무지 감이 안 잡혔죠. 그런데 이 두 어구를 다른 거로 교체할 수는 없었어요. 거기서부터 시작해서 가사를 쌓았죠.
Q. 이전과 접근방식을 바꿨다고 하셨잖아요? 보컬이나 사운드 측면에서 다르게 접근한 부분이 궁금합니다.
정: 일단 지난 EP에 비해 노래가 많이 늘어서 사용할 수 있는 발성의 가짓수가 늘었고요. 탑라인도 최대한 이전보다는 명확한 라인으로 들리게 하자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진: 사운드 쪽도 딱히 다르게 접근하려고 한 건 없는 것 같아요. 대신 음악이 살아있으면 좋겠다는 느낌이 들어서 불규칙적인 요소를 조금씩 넣었던 것 같아요. 이전까지는 항상 그리드에 맞췄다면, 조금 더 인간적으로 표현하거나 제가 아예 손으로 찍었죠.
Q. 코러스도 되게 인상 깊었어요. 이런 연출은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주고받으면서 나오는지 궁금합니다.
진: 제가 보컬 아이디어를 낼 때도 있지만, 누나가 제안한 게 너무 좋아서 쓰는 경우도 많아요. 아마 누나가 녹음한 파일 보낼 때. 애초에 코러스를 해서 보냈을 거예요. 그런 식으로 보낸 걸 전부 쓰는 경우도 있고, 잘라서 쓰는 경우도 있죠. 보통은 누나가 먼저 해서 보내줘요.
정: 보컬은 어쨌든 다 제 입에서 나와야 되잖아요? 제가 녹음을 싹 해서 가져오면 한진이가 알아서 조립해요.
듣기 좋으면 그걸 이리저리 만져보죠. 그래서 제 녹음 의도와 다르게 쓰이는 경우도 많아요.
Q. 보컬을 악기처럼 쓰시는 거군요.
진: 그렇죠. 누나가 보컬을 녹음해서 가져오면 제가 에디팅하고, 그걸 피드백해서 더 바꿔보는 거죠. 누나가 별로라고 하거나 더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트랙을 갈아엎는 경우도 많아요. ”Lifetime”이 좀 그랬던 것 같아요. “Lifetime” 중간에 더블 타임(Double time)으로 바뀌는 부분이 있잖아요? 템포가 확 빨라지는 부분이요. 원래는 더블 타임이 아니었는데, 누나가 써온 멜로디가 좋아서 살려보고 싶었어요. 어떻게 살릴지 고민하다가 코러스를 완전히 갈아엎었죠. 원래는 초반 템포 그대로 쭉 가는 곡이었어요.
Q. 소개글에 “Lifetime”은 자연스러운 소리들을 녹음하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고 쓰여있어요. 아이디어가 어디서 나왔는지.
진: 화장실을 가려고 복도를 지나는데, 복도에 울리는 소리가 너무 좋더라고요. 녹음하면 재밌겠다 싶어서 화장실 문 열고, 물을 트는 것까지 녹음했어요. 물론 샘플로 쓰려는 거니까 템포도 계산해서 땄죠.
정: 너무 신기한 게 얘가 걸은 게 딱 90 템포더라고요. 어떻게 90 템포에 딱 맞춰서 걸었는지 모르겠어요. 너무 신기해요.
진: 머리에 들어있는 일정한 템포가 있으니까 그걸 기준으로 했던 것 같아요.
정: 그게 90.xx 템포도 아니고, 딱 90인 게 너무 신기해요. 뭐 92 템포 이런 것도 아니고요. (웃음)
진: 저희 클럽 놀러 갔을 때 녹음한 걸 앰비언스 사운드로 쓰기도 했죠. 2절 브리지 넘어가면서 나오는 소리는 지하철 개찰구에 교통카드 찍는 소리를 녹음해서 샘플링 한 거예요.
정: 노래 자체가 라이프 타임이고, 라이프 스타일인 거죠.
Q. 멜로디나 가사는 어떻게 붙이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정: “Lifetime”은 삶을 긍정적으로 얘기하고 싶었어요. 제가 당시에 “오늘을 좀 더 사랑하는 방법이 있을까?”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그런 메시지를 싣고 싶어서 이야기를 일기처럼 쓰고 그걸 가사로 바꿨죠. 멜로디는 비트에서 영감을 받아서 썼어요. 신기했던 건, 가이드 녹음할 때 “Lifetime”이라는 단어가 나왔었어요. “walking on my mind for a lifetime”이라는 가사가 있는데, 가이드 녹음할 때 “Lifetime”은 자동으로 입에서 튀어나왔죠. 앞부분은 전부 “나나나나”로 뱉었고요. 한진이가 일상을 살면서 보게 된 소리들이기 때문에 제 입에서 그렇게 튀어나온 건가 싶어요. 그래서 이건 무조건 이런 느낌으로 가야 된다고 생각했죠.
Q. 나도 모르게 싱크가 맞았군요.
정: 그렇죠.
진: 그렇죠. 무의식에서 오는 힘이 정말 큰 것 같아요.
Q. 더블 타임으로 빠르게 진행하다가 중간에 차분한 분위기로 전환되잖아요? 이때 배경에 깔리는 소리요. 이게 클럽에서 따온 샘플인가?
진: 아, 그 소리는 아마 정말 작게 나오고 있을 거예요.
Q. 정글 리듬으로 가다가 차분해지면서 앰비언스가 깔리는데요. 곡 주제를 표현하는 요소로서 넣은 건가요.
진: 곡 주제 때문이기도 하지만, 저는 원래 곡 쓸 때 항상 앰비언스를 넣어요. 디지털에서 들었을 때는 정말 아무 사운드가 없는데, 자연 상태에서는 항상 소리가 들리잖아요. 그래서 앰비언스가 항상 깔려있어야 자연스러워져요.
Q. 앰비언트 음악도 많이 들으시는지.
진: 많이는 안들어요. 그래도 존 홉킨스(Jon Hopkins)나 닐스 프람(Nils Frahm) 같은 사람들 좋아합니다.
Q. 두 번째 선공개 곡 “race”는 어떻게 작업이 시작된 곡인가요.
진: 저희가 “race”를 만들 때 바닷가에 갔다 왔어요. 같이 놀면서 UK 개러지나 정글 리듬이 쓰인 곡들을 들었을 거예요. 그런 곡이 만들고 싶어져서 한번 찍어볼까 싶었죠. 그래서 제가 드럼 찍고, 코드 만들고 누나가 멜로디를 만들면서 시작했어요.
Q. 이 노래 들을 때 어떤 느낌이 떠올랐고, 어떤 이야기를 멜로디나 가사로 붙이면 좋겠다고 생각하셨는지.
정: 사실 샤르키 이름으로 발표된 곡들은 작업하면서 제가 좋다고 느낀 곡들이에요. “race”도 트랙 들었을 때 정말 좋고 섹시했어요. 그래서 섹시한 느낌의 멜로디로 풀어내야겠다고 생각했죠.
Q. 이런 투스텝 개라지나 정글 리듬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무엇이 핵심이라고 생각했고 어떻게 프로덕션에 반영하려고 했는지.
진: 사운드적인 것보다는 누나가 말했던 것처럼 섹시한 느낌을 더 많이 살리려고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악기도 적게 쓰려고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중요한 악기는 신디사이저랑 드럼, 베이스 정도 있네요. 나머지는 서포트 해주는 사운드인데, UK 개러지지만 조금 더 미니멀하게 들려주고 싶었죠. 보컬 소리도 더 잘 들리게 하고 싶었고요. 그리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Q. UK개러지의 장르적 포인트들을 잘 안다고 생각했어요. 이런 포인트들은 어떻게 넣게 된건가요?
진: 그냥 UK 개러지 들으면 항상 스크래치가 나오니까 샘플을 따와서 적재적소에 쓴 거예요.
Q. 장르적 포인트를 연구했다기보다는 섹시한 무드나 아이디어를 구현한 걸로 봐도 되는 건가요?
진: 맞아요. 사실 이론적으로 접근하는 것도 좋지만, 거기에서 나오는 한계가 너무 명확해요. 곡의 이미지를 생각하고 상상하면서 곡을 만들면 더 재미있고, 예상하지 못했던 게 많이 나오죠. 그래서 이론적으로 덜 접근하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누나는 제가 그런 식으로 작업하도록 도와줘요. “Iris”의 멜로디를 만들 때, 누나가 “사랑하는 걸 생각하면서 기타 멜로디를 만들어봐.”라는 식으로 던져준 적이 있어요. 그렇게 작업하니까 좀 더 자연스러운 멜로디가 나오더라고요. 텐션을 뭘 써야 하고 코드톤을 써야 한다는 것보다는 무의식과 이미지네이션에서 오는 영감이 더 자연스럽고 좋은 것 같아요.
Q. “Race” 비주얼라이징은 어떤 느낌으로 만들려고 한건가요?
정: 3D 아티스트분이랑 같이 회의했을 때 영화 얘기를 했어요. 당시에 제가 <포드 V 페라리>라는 영화를 보고 너무 재밌다고 생각했거든요. 실제 인물들의 레이스에 관한 영화인데, 우리 곡이 레이스잖아요? 그래서 그 얘기를 한참 했죠. 그랬더니 그 친구도 <포드 V 페라리>를 보고, 그 영화 모티브가 된 실존 인물 인터뷰도 찾아보더라고요. 그러더니 옛날 영상을 따와서 그 위에 턴테이블 놓고 뚝딱뚝딱 만들었어요. 아마 그 비주얼의 주제는 페라리였던 것 같아요. 그 외에는 전적으로 저희에게 도움 주시는 3D 아티스트분께 맡겼죠. 너무 훌륭하게 잘 만들어주시더라고요.
Q. ‘Circle’과 ‘Ankle’이 라임이 맞게끔 발음되잖아요? 어떻게 시작된 건지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있으신지.
정: 이 곡은 가이드 녹음을 좀 오래전에 해놓고 잊고 있다가 나중에 다시 꺼낸 곡이에요. 이것도 가이드 녹음 하면서 ‘Circle’과 ‘Ankle’이 튀어나왔어요. 라임이 맞으니까 입에서 튀어나온 것 같아요. 그런데 다시 꺼낸 시점에서 친구랑 얘기하다가 발목과 아킬레스건에 대한 얘기가 나왔어요. 그때 사랑하는 사람의 아킬레스건을 덮어주고, 위해주는 게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에 대해서 얘기했어요.
Q. 빌드업이 있을 것 같은데요.
정: 딱히 빌드업이 없어요. (웃음) 그냥 그리스 로마신화 이야기 하다가 튀어나온 거예요. 그리스 로마신화 얘기하다가 아킬레우스로 넘어가고, 거기서 발목으로 넘어갔죠. 그 얘기를 하다가 영감이 떠올라서 적어놨어요. 그걸 바탕으로 아킬레스건을 지켜주는 마음에 대한 얘기를 쓴 거고요. 정리하면 ‘Circle’과 ‘Ankle’이 주제인 트랙이 먼저 있었고, 그걸 잊고 있었다가 아킬레스건 얘기를 하면서 떠오른 가사입니다.
Q. “Circle” 소리 배치할 때, 신경 쓰신 부분이 있는지.
진: 최대한 튀지 않으면서 곡을 살릴 수 있는 소리를 많이 생각했던 것 같아요. 좀 더 어쿠스틱하고 아기자기하지만, 너무 귀엽지만은 않은 사운드를 만들려고 노력했죠. 그리고 앰비언스보다는 어쿠스틱한 느낌에 중점을 뒀어요. 미니멀하고 듣기 편하게 만들고 싶었거든요.
Q. “no one will be able to harm you”부분은 일부러 신경 써서 부르신 것 같아요.
정: 한진이도 좋아하더라고요. 여기 포인트를 줘서 극락인 구간으로 들려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웃음)
진: 맞아요. 극락 파트. (웃음)
정: 여기는 들을 때 극락이어야 한다고 정해놓고 시작했어요. 연약하고 예쁘게 보이는 게 핵심이었죠.
Q. “Special You”의 초안은 어디부터 시작되었는지.
진: “Special You”는 처음에 누나가 신곡을 만들려고 썼던 곡이에요.
정: 제가 다니엘 시저(Daniel Caesar) 앨범을 듣다가 “Always”라는 곡을 듣게 됐어요. 곡 내용이 너무 좋고 사랑스럽더라고요. 이렇게 사랑스러운 곡을 써야겠다 싶었어요. 그렇게 처음에는 곡 가제가 “How Beautiful”이었어요.
한진이는 보통 비트부터 쓰잖아요? 그런데 저는 코드랑 멜로디부터 나와요. 그래서 코드 치면서 멜로디를 불렀죠. 사랑하는 사람을 애달프게 찬양하는 가사를 영어로 쭉 써놓고, 아무거나 읊으면서 멜로디를 썼죠. 그리고 신곡으로 내자고 한진이한테 보내냈어요. 그렇게 작업한 곡입니다.
진: 들었을 때 너무 좋긴 했지만, 저는 처음에 살짝 반대했어요. 발라드를 넣는 게 맞는지 고민했거든요. 그런데 누나가 저를 설득했죠. 그래서 저도 하는 게 맞겠다고 생각해서 진행했어요. 그리고 “Special You”는 너무 어려워서 가장 마지막까지 편곡했던 곡이에요.
정: 맞아요. 처음이어서 그런 것도 있었겠지만, 편곡이 너무 어려웠어요.
Q. 어떤 부분이 어려우셨는지.
진: 사운드적으로 드럼 쓰고 쌓는 건 오히려 쉬워요. 악기들이 감정적인 부분을 최대한 서포트하면서 곡을 이끌어야 하는데, 서포팅 정도를 조절하는 게 너무 어려웠죠. 어떤 식으로 해야 곡이 더 살아날지 고민하는 것도 너무 힘들었고, 믹싱도 많이 신경 썼던 것 같아요. 보컬 백 코러스 디자인도 많이 신경썼고요. 그래서 누나랑 같이 고민하다가 데드라인 2~3주 전에 나왔어요. 그때 어떻게 하면 좋을지 갑작스레 정리돼서 끝냈던 것 같아요.
정: 초반에는 각자의 집에서 따로 편곡 했어요. 그리고 서로의 편곡을 다 반려했죠. 그래서 만나서 해보자고 제안했고, 만나서 작업을 시작했죠. 그랬더니 그날 다 나왔어요.
진: 저도 누나한테 7~8개 정도 버전을 보냈는데, 다 반려당하니까 의욕이 없어지더라고요. 누나도 저한테 많이 보냈는데, 저도 다 아닌 것 같았어요.
정: 그런데 결국 만나서 하니까 나오더라고요. 신기했습니다.
Q. 마지막 건반 나오는 파트는 어떻게 녹음한 건가요? 방에서 건반 치는 걸 그대로 녹음하신 건가요.
진: 콘덴서 마이크로 건반 치는 걸 직접 녹음했을 거예요. 마지막 구간에서는 누나가 옆에서 피아노 치면서 노래하는 느낌을 주고 싶었거든요. 듣는 사람한테 그런 공간감을 주려고 많이 노력했죠. 누나 집에 실제로 피아노가 있는데, 거기에 콘덴서 마이크 끌고 가서 보컬이랑 같이 녹음했어요. 그 파일을 가지고 누나 집의 공간감을 살리려고 계속 노력했어요. 저도 누나 집에 많이 가봤으니까 그 공간 자체를 계속 상상하면서 공간감이랑 음향을 조절한 거죠.
Q. “Special You”랑 “Race”는 서하영 님께 보컬 디렉팅을 받으셨는데, 보컬 디렉팅을 부탁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정: 그전까지는 그냥 한진이가 디렉팅을 했어요. 그런데 보컬 전문가한테 디렉팅을 받으면 어떨까 싶어서 보컬 전공인 친구한테 부탁했죠. 한번 해봤는데 너무 편하더라고요. 원래는 녹음실 부스 안에 들어가서 녹음 하고 나면 제가 계속 다시 들으면서 땄거든요. 한진이의 디렉팅을 못 믿어서요. 그런데 그 상황이 되면 서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요. 그런데 디렉팅을 해주는 친구가 괜찮은 부분과 아닌 부분을 전부 정해주니까 고민할 필요가 없어서 너무 편하더라고요.
Q. 디렉팅을 어떻게 해 주셨는지.
진: 제가 보컬 디렉팅에 대해서 너무 몰라서 서로 많이 힘들었죠. 그전에는 사실 디렉팅이라고 보기도 좀 애매해요. 저도 들으면서 헷갈렸거든요. 그래서 아예 제가 보컬을 배웠어요. 지금은 좀 늘었다고 하더라고요.
정: 그렇게 배우니까 듣는 귀도 늘더라고요.
진: 좋은 것 같아요.
Q. 이제 앨범 마무리 질문 해볼게요. 이번 EP [Lifetime]은 두 분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앨범인가요?
진: 둘이 같이하는 음악의 시작점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긴 음악 인생을 살아가면서 이 시기를 뒤돌아보며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 있는 음반이지 않나 생각해요.
정: 저도 샤르키의 포문을 여는 앨범이라고 생각해요.
Q. 이번 앨범 작업하면서 서로 무엇을 배우셨고, 앞으로 샤르키의 음악이나 행보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 같아요?
정: 이번 앨범을 만들면서 브랜딩과 기획에 대해 많이 생각했어요. 이게 어렵고 힘들다는 것도 배웠고, 정말 필요한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앞으로도 계속 브랜딩이나 기획 단계를 거쳐서 활동하게 될 것 같아요.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진: 저도 사실 누나처럼 브랜딩에 대해서 계속 고민하고 있었어요. 그런 부분이 계속 발전하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런 것보다 좀 더 많이 배웠다고 생각하는 건 같이 음악 만드는 문화에 대한 부분이에요. 그런 부분에 대해서 좀 더 알게 되고, 팀으로서의 저희 관계도 많이 깊어진 앨범이었어요. 서로를 좀 더 사랑하게 되는 과정이었다고도 생각해요. 그래서 주변 사람들과 더 많은 사랑을 나누고, 또 사랑을 받는 것들을 알게 해준 앨범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부분이 저를 인간적으로 성장시킨 것 같아요.
Q. 음향학이나 사운드, 작사나 탑라이닝을 하는 부분에서는 어떤 쪽으로 발전한 것 같으세요?
진: 앨범 만드는 부분에 있어서는 덜어내는 걸 많이 배웠어요. 예전에는 꽉 채우려고 하는 경향도 있었고, 인위적으로 뭔가를 만들어내려고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요즘은 무의식적으로 자연스럽게 나오는 모습을 좀 더 드러내려고 노력한 것 같아요.
정: 작사는 우선 영어 작사를 도전했다는 것과, 조금 더 명확한 의미를 전달하는 것을 배운 게 있고요. 탑라인은 나 혼자 부르는 게 아니라 듣는 사람 입에도 달라붙을 수 있는 탑라인이 뭔가에 대해 연구를 좀 했던 것 같아요.
Q. 혹시 계획된 활동이 있으신가요?
진: 둘 다 개인 EP를 준비 중이에요. 그 뒤에 저는 두 달 정도 여행을 갔오려고 해요. 그 이후로는 싱글 발매하고 라이브하면서 활동하게 될 것 같아요.
Q. 개인 EP는 어떤 느낌으로 준비 중이신가요?
진: 개인 EP는 제 일기 같은 앨범이에요. 아카이빙 느낌이 강하죠. 제가 전시 보는 걸 좋아하는데, 미술관 같은 데 가면 작가들이 몇 년도에 썼고, 몇 년도에 만들었다고 적어두잖아요? 그런 느낌이라고 생각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저번 싱글처럼 비트뮤직일 것 같고, 제가 하고 싶은 대로 만드는 느낌이죠.
Q. 다정 님이 준비하고 계신 것들은 어떤 느낌이에요?
정: 6~7곡 정도 수록될 EP를 준비하고 있어요. 제 개인적인 이야기를 중심으로 구성하고 있는데, 조금 더 제 코어를 끄집어내는 곡들이 될 것 같아요. 세상 밖에 꺼내 놓는 저의 첫 비밀 이야기들입니다.
Q. 사운드는 이전에 들려주셨던 사운드랑 비슷하게 가는 건가요?
정: 아닐 것 같아요. 제 이야기와 목소리와 음악에 가장 맞는 편곡이 무엇인지 계속 연구하면서 앨범을 준비하는 중이라, 전에 들려드리지 않았던 사운드가 될 것 같습니다.
Q. 기대가 됩니다. 샤르키로 발표하는 작품은 예쁘고 세련돼서 좋지만, 개인으로 하실 때는 날카로운 게 들려서 더 재밌더라고요
진: 서로 또 이제 가는 방향이 많이 다르거든요.
정: 개인 작업물로 보면 진짜 정반대니까요.
진: 맞아요. 개인으로는 정반대죠.
Q. 좋습니다. 여기서 인터뷰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