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전자음악 뮤지션, 싱어송라이터 Scorched Evrth(스코치드 어스)가 새 정규 앨범 `그림자와 마침표`를 발매했다. 2년 전에 발매된 첫 번째 정규 앨범 `JA WA`가 전자 음악 제작을 위한 방법적 탐구의 결과물이었다면 두 번째 정규 앨범 `그림자와 마침표`는 상실, 불안감, 중독과 같은 주제를 문학적 가사와 보컬 멜로디, 어쿠스틱 인스트루멘탈로 노래한 작업물이다. Mixmag Korea는 이번 인터뷰에서 Scorched Evrth와 함께 `그림자와 마침표` 앨범 제작기를 자세히 기록했다.
에디터: 박민천
Q. 새 정규 앨범 발매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앨범을 발매하고 나서 주변 반응은 어땠는지, 팬들은 어떤 반응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오랜 기간 준비하고 발매한 앨범이라 세상 밖으로 자식을 내놓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앨범을 세상에 내놓는다는 게 즐겁기도 하고 두려움도 있었어요. 팬들은 제가 노래 앨범을 낼 줄은 몰랐겠지만, 주변 동료들은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이라 크게 놀라지 않았고, 축하도 많이 받았습니다. 앨범 준비하면서 피드백도 많이 받았고요.
Q. 첫 정규 앨범 ‘JA WA’와 새 정규 앨범 ‘그림자와 마침표’ 사이에 공백이 있었고, 두 앨범 사이에 음악적 특징에도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
장르를 바꾸려 했다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시간이 흐르고 인격적 성장을 겪으면서 하고 싶은 말을 잘 표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JA WA’를 만들 때는 붕 뜬 기분이었는데, 2년 동안 현실에 적응하며 불안감도 줄었어요. 음악을 더 폭넓게 많이 듣게 되었고, 어쿠스틱 기타의 질감이나 가사, 멜로디 같은 요소들을 더 흡수하게 되면서 앨범도 이러한 영향을 받게 되었습니다.
Q. 생소한 기술과 과정을 새로 익혀야 하는 과정이 편하지만은 않았을 것 같은데, 그 배움의 과정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처음에는 노래 부르는 것에 대한 거부감과 두려움이 컸던 것 같아요. 원래 노래를 즐겨하지는 않았는데 어느 순간 노래를 하고 싶은 마음이 커졌어요. 앨범을 만들면서 동시에 악기 연습과 보컬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음악을 더 잘 이해하고 다루기 위해 화성학 공부도 틈틈이 하고 있고, 지금도 꾸준히 연습하는 과정을 즐기고 있어요.
Q. 삶의 안정기라고 말씀하셨지만 이번 앨범의 테마는 상실, 불안감, 중독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항상 불안한 감정들을 해소하고 싶은 욕구가 있었어요. 제게는 굉장히 흥미로운 이야기인데 오히려 삶을 안정적으로 사는 방법을 알게된 이후부터 오히려 불안한 감정을 담담하게 노래할 수 있게 되었어요. 불안한 감정이 부정적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은데 안정과 불안이라는 감정이 균형을 이루어 삶에 공존하는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한쪽으로 치우치기 보다는 두 가지 감정 사이를 오가며 함께
사는거죠. 안정적인 상태에서 불안함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대신 몰입은
엄청나게 했어요, 제 인생에서 최고로 몰입했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요.
Q. 첫 앨범 ‘JA WA’와 이번 앨범 모두 굉장히 개인적인 앨범이지만 스스로를 표현하는 방식이 다르다고 느꼈습니다. 두 앨범의 자기 표현에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둘 다 제 자신을 표현한 앨범이지만, ‘JA WA’ 때는 인공적인 생태계 안에 머물러 기술적 역량을 보여주는데 조금 더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그림자와 마침표’는 그 울타리를 벗어나 그 밖에서 소통을 하려는 시도였다는 느낌이 듭니다. 가사를 쓰기 시작한
것도,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것도 세상과 소통을 하기 위해서였다는
기분이 듭니다. 공통점이 있다면 제가 할 수 있는 최대한 몰입해서 그것을
음악으로 이끌어냈다는 점이에요. 2년 전에 발매한 ‘JA WA’ 앨범을 바라보면 흐뭇한 감정이 크게 들어요. 물론 작곡 측면에서, 기술적인 측면에서 저만 아는 아쉬움들이 있지만 돌이켜봐도 일말의
후회도 없을 정도로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자음악 뮤지션도
물론 좋지만 요즘에는 싱어송라이터로 소개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 음악적 뿌리가 전자음악에 기반해있는 것도 맞지만 지금은 곡을
쓰고 노래를 하는 것에서 큰 즐거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Q. 공백기 이후에 싱글이나 EP 발매보다 정규 앨범을 발매하기로 결정한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싱글이나 EP를 피하는건 아니지만 저는 앨범이 사람들에게 더 많은 이야기를 전달해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번에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많이 담겠다 다짐한 만큼 자연스레 앨범을 목표로 만들었던거 같아요. 향후 싱글이나 EP도 발매해 보고 싶습니다.
Q. 차분하고 조용한 정규 앨범이었습니다. 밖으로 드러내는 음원반이 주목받는 환경에서 굉장히 용기있는 움직임이었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부담감이 없지는 않았지만, 불안과 걱정이 그리 크지는 않았어요. 마음 한켠에 자그마하게 자리한 정도였고, 저는 제 할 일에 몰두하면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했기 때문에 걱정을 크게 하지 않았습니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더 많이 하고 싶었고, 제 안에 있는 것을 꺼내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 어느 순간 들었어요.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그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찾아왔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불안하지 않았고, 오히려 즐거운 마음으로 임했던 것 같아요.
Q. 문학적이고 시적인 은유나 표현이 굉장히 인상깊은 앨범이에요.
평소에 책을 많이 읽는 편은 아니지만, 영감을 받고 싶을 때는
시집을 자주 읽어요. 그렇지만 그것마저도 깊이 있게 읽지는 못하는 편인데, 가사에 관해서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저는 곡을 만들 때
가사를 제일 마지막에 쓰는 편이에요. 멜로디를 먼저 만든 다음, 편곡을
진행하면서 가사를 나중에 완성하는 스타일이죠. 어느 날 앨범 작업을 하던 중 감기에 걸려서 5일 정도 아팠던 적이 있었어요. 열도 나고, 몸이 아프다 보니 할 일이 없어서 그때 10곡의 가사를 모두 작성하게
되었어요. 열이 나서 몽롱한 상태에서 한 번에 몰아서 썼던 것 같아요. 그 이후로는 거의 수정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경험이 굉장히 신비로웠어요. 그전까지는 가사를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이 많았거든요. 몸이 아프고 정신이 없으니, 오히려
그 몽롱한 상태에서 가사를 쓸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어요.
Q. 전작과 마찬가지로 이번 앨범에서도 보컬 샘플링이 주요하게 사용되었어요. 스코치드 어스만의 보컬 샘플링 팁을 공유해줄 수 있을까요?
아마 지루한 답변이 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제가 할 줄 아는 건 다른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녹음하고, 자르고, 편집하는 것이 전부에요. 마음에 드는 것이 나올 때까지 계속 들으면서 수정하고, 자르고, 편집하고, 그 과정의 반복이에요. 물론 가령, 디스토션을 10개씩 걸지 말자 같은 규칙들이 무의식 속에 있지만, 가끔 그런 것들도 한 번씩 깨보는 시도를 해보려 해요. 편집 과정을 마친 뒤 이펙팅을 하면서도 최대한 자유롭게 해보려고 합니다.
Q. 어쿠스틱 사운드가 주로 사용되었고 노래도 부를 수 있는 앨범이에요. 라이브 계획이 있으신가요?
라이브를 염두하고 만든 음악은 아니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만 어쿠스틱 기타 사운드에 변칙적인 튜닝이 많이 사용되어서
라이브로 구현하는데 다소 어려움이 있을 수 있겠어요. 기회가 된다면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Q. 앞으로의 활동 계획에
대해서 힌트를 던져주신다면요?
앞으로 더욱 많은 장르와 스타일로 찾아 뵙고 싶어요. 저는 제가 할 수 있는것에 최대한 집중하며 창작활동을 이어 나가 볼게요. 저와 청자의 거리를 허무는 그런 음악을 만들고 싶습니다.
Q. 믹스맥 코리아 독자들에게
마지막 코멘트를 남겨주세요!
그림자와 마침표 잘 듣고 계신가요? ‘Dear Ruby’, ‘가느다란 빛’ 두 편의 뮤직비디오도 공들여 준비 했어요. 저는 앨범도 사람처럼 나이를 먹는다고 생각해요. 앨범이 더 성숙해지면 어떻게 들릴까 궁금해지네요. 생각나면 종종 들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