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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NAME IS : Radio Revolution
다양한 경험에서 비롯한 깨달음으로 자신을 가다듬는 DJ
MIXMAG KOREA | 2023-09-13

Radio Revolution은 부산에서 서울, 그리고 세계에 이르기까지 곳곳을 오가며 자신의 이야기에 그루브를 담아 플로어에서 유려하게 풀어내는 베테랑 DJ이다. Mixmag Korea는 부산의 대표적인 로컬 DJ이자 이제는 한국 언더그라운드 댄스 뮤직 씬에 상당한 영향력을 보여주는 아티스트로 거듭난 Radio Revolution과 함께 그의 DJ 커리어 흐름과 터닝 포인트 그리고 가치관에 관해서 대화를 나누었다.


Q. Radio Revolution은 부산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볍게 묻자면 부산이 고향인가?



원래 나는 충청도 사람이다. (웃음) 인삼으로 유명한 금산에서 나고 자라고 10대의 학창 시절을 보냈다. 부산은 제2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인데, 그런 부산을 떠나서 10년간 해외 생활을 하다가 다시 부산으로 돌아왔다.


Q. 유년기 금산에서 어떻게 지냈나? 학창 시절에도 음악을 했나?


물론이다. 나는 고등학생 때부터 디제잉을 했다. 학창 시절에는 인근 대도시 대전의 나이트클럽 등지에서 활동을 시작했고, 음악다방, 콜라텍에서도 디제잉을 했다. (웃음) 그러다가 20대 초반에 부산 해운대의 한 호텔에서 DJ를 구인한다고 해서 부산으로 둥지를 옮기게 된 것이 부산과의 인연의 시작이었다. 학창 시절의 DJ 활동은 커리어라고 보기엔 조금 어렵기 때문에 부산에서의 활동을 본격적인 커리어의 시작이라고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특히 내가 가장 왕성한 활동했던 시기는 2007년~2008년도였는데, 당시 나이트클럽과 언더그라운드 클럽 양쪽 다 경계 없이 다양하게 활동했기에 당시에는 DJ 활동을 통한 수입도 상당했다. 기억해 보면, 그 당시에는 요즘에 비해 한 클럽에서 들을 수 있는 음악적 다양성이 컸던 것 같다. 하나의 클럽에서 시간대별로 하우스, 테크노, 트랜스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나오곤 했다.


Q. 금산에서 부산으로 가게 된 계기가 있다면? 누구의 소개로 부산에 가게 되었나?


나에게는 음악적 은사가 있다. 옛말로 ‘음악 아버지’ 같은 분인데, ‘이구’라는 분이다. 그 유명한 ‘Dr. Reggae’ 멤버였고, K-POP 댄스 그룹 ‘Space A’의 멤버이기도 했던 전설적인 DJ이다. 그분으로 인해 부산으로 가게 되었다.


Q. 대전에서의 DJ 커리어가 어찌 보면 첫발인데,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어릴 적 기억 속 나의 부모님은 레코드 컬렉터셨다. 그래서 집에 레코드판이 매우 많았다. 나는 시골 사람이다 보니 놀거리가 많지 않아 음악 듣는 것을 좋아했고, 또 들을 시간도 많았다. 그 당시 마을 상권에 다방들도 꽤 있었는데, 그곳에서는 멘트하는 라디오 DJ들을 많이 보곤 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친구들과 인근 대도시인 대전에 놀러 가게 되었는데, 그때 우연히 성인 나이트클럽에 처음 들어가 보고 충격을 받았다. 이곳은 완전히 신세계였다. DJ들이 레코드판을 연달아 플레이하며 음악을 끊지 않고 자연스럽게 믹싱하는 모습을 보고 ‘아, 이걸 해야겠다’라고 느꼈다.


그 당시에 앞서 언급한 이구 형님을 만나게 되었다. 그분은 일본을 자주 왕래하며 활동을 이어 온 DJ였다. 그때부터 그분과 자주 어울리면서 많은 것들을 배웠다. 그분은 클럽 DJ로서도, 앨범을 발매하는 뮤지션으로서도 매우 훌륭했던 분이었고, 특히 나에게는 더없이 영감을 주는 아티스트였다. 요새는 활동하지 않으시는 것이 너무나 아쉽다. 일본의 경우, DJ WADA가 65세임에도 불구하고 왕성한 활동을 이어 나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OG들이 활동할 기회가 많아지기를 바란다.


Q. 전문적인 댄스 클럽 DJ를 하게 된 시점은 언제인가?



처음 DJ를 시작할 때 한국에는 전문적인 음악 베뉴가 많지 않았다. 마트마타, 명월관 정도 있었나? 부산에는 더더욱 없었다. 부산은 힙합이 좀 더 강세였던 동네였던 것 같다. 그러다가 2000년대 후반 부산의 대표적인 일렉 클럽 ‘엘룬’의 대표님이 이전까지는 힙합 클럽을 운영하시다가 하우스와 일렉트로 등의 음악 장르를 접하시고는 ‘이거 되겠다!’ 싶으셨는지 일렉트로닉 음악을 전문적으로 플레이하는 클럽 엘룬을 만든 후 저를 엘룬의 DJ로 많이 써주셨다.


Q. 부산에서 가히 전설적이었다고 들었는데, 그런 부산 생활을 접고 해외로 가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부산에서 활동하면서, 광안리에 ‘이녹맨션’이라는 애프터 클럽을 만들었다. 성서에 나오는 ‘이녹’이 천사니까, ‘천사의 집’이라는 의미를 담았다고 볼 수 있다. 이녹맨션이 오픈 1년 차까지는 많이 힘들었는데, 2년 차부터는 완전히 흥행했다. 그래서인지 이곳에 많은 인물이 거쳐 갔다. 지금은 한국을 뛰어 넘어 세계적인 스타-헤드라이너가 된 DJ도 있었고, 이태원의 유명 베뉴의 파운더도 거쳐 갔고, 한국 언더그라운드 테크노 씬에서 굉장히 높은 위치에 올라간 친구도 있었다. 그 시기 이녹맨션의 매출도 절정을 찍고 있던 때라, 이때가 클럽 운영을 그만둘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클럽이 잘 안될 때 접고 나가면 왠지 도망가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니 클럽이 절정을 찍은 시점에 클럽을 처분하고 해외여행을 시작했던 것이다. 주변에서 나를 보고 미쳤다고 하는 소리도 들었지만, 그 시기를 놓치면 다시는 여행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몇 년간 아무것도 안 하고 다 내려놓고 여행만 했다. 휴대전화도 없이.


Q. 처음에는 호주로 갔다고 하는데, 그 때 이야기를 하자면?


거의 2년간 놀기만 했다. 캠핑카 사고 페스티벌 다니고 캠핑하고 수영하고 서핑하고 명상하고… 호주 곳곳을 둘러 다녔다. 가게를 처분해 모아 둔 돈이 좀 있었는데, 돈이라는 게 쓰기만 하니까 금방 탕진하게 되더라. 그 당시 재미있던 에피소드가 있었다. 한 번은 친구와 운전해서 호주 사막을 횡단하다가 그곳에 갇힌 적이 있다. 자동차가 사막 한 가운데서 멈추었다. 자동차 부품에 문제가 있던 것 같은데 처음에는 이 상황도 재미있어서 사막에서 이틀 동안 멈추어서 놀았다. 그런데 정신 차리고 보니 심각함을 깨달아 차를 하루에 12km씩 밀었다. 일주일 정도 차를 밀고 끄니까 조그만 마을이 나와서 고칠 수 있게 되었다. 정말 아찔했다.


Q. 호주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DJ 활동을 했나?


호주에는 숲이나 산속에서의 레이브 파티가 종종 있다. 그것을 `Doof`라고 부르는데, 2~300명 정도의 사람들이 알음알음해서 모여 수일에 걸쳐 놀 수 있는 파티이다. 공식적으로 열리는 파티가 아니다 보니 파티 장소를 찾아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Doof를 찾으러 숲 속에서 헤매다가 들어오지 못하면 꽝인 것이다. (웃음) 대충 숲속 어딘가에서 Doof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 ’둠칫둠칫‘ 소리를 따라 숲속을 뒤져서 찾는 식이곤 했다. 그러다가 Doof를 개최하는 친구를 알게 되었는데, 이 친구가 Doof 파티에서 디제잉을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해서 같이 파티를 만들어 나가게 되었다.


Q. 그러다 호주를 떠나 세계 여행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호주에 더 있고 싶기도 했지만 마침 2년짜리 비자가 만료되었다. 그때부터 본격적인 나 홀로 배낭여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방콕 공항에 내려서 도시까지 걷고 또 걷다가 길거리에서 자고… 그런 식이었다. 유럽 역시 걸어서 횡단하는 식이었다. 교통비 1,000원도 아끼기 위해 항상 걸어 다녔다. 이때가 내 인생의 하이라이트였던 것 같다. 거의 65개국 250 도시 정도를 걸어 다녔다. 그렇게 하다 보니 다시금 디제잉을 하고 싶은 욕구도 생기더라. 그래서 여행지에서 디제잉을 할 기회를 찾게 되었고 그러한 기회가 있는 곳이라면 여행의 목적지가 되기도 했다.


Q. 중국에서 꽤 오래 머무른 것으로 알고 있다. 중국 여행 이야기를 하자면?



여행을 하던 중 상하이로 흘러들어 왔는데, 상하이에서 3년 반 정도를 지내게 되었다. 내가 상하이에 도착했을 때, 상하이는 언더그라운드 및 클럽 씬의 분위기가 잘 잡혀가던 시기였다. 마침 그때 내게 클럽에서 디제잉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당시 내가 음악을 플레이했던 클럽 프로모터가 나를 페스티벌에 섭외해 주어서 열심히 준비했다. 페스티벌 이후 중국에서 일이 봇물 터지듯 들어와 계속 일정을 소화하다 보니 3년 이상을 중국에서 보내게 되었다.


Q. 만리장성에서 플레이했던 일에 관해 이야기하자면? 어떻게 무대에 서게 되었나?



맞다. 2번 정도 무대에 섰다. 그 덕분에 아시아에서 유명세를 얻게 되었다. 상하이에 ‘맨션’이라는 클럽이 있는데, 내가 상하이에 머물던 시기에 맨션의 관계자들과 친분을 쌓게 되었다. 중국은 도시마다 클럽 프로모터끼리 친분을 쌓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상하이의 맨션 팀이 나를 베이징 클럽 프로모터들에게 추천하여 만리장성에 데뷔하게 되었고, 그 후로 ‘YinYang Music Festival’ 등 다양한 페스티벌에서 계속 나를 찾아 주었다.


Q.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 계기는?


방랑자 성향이 있어서인지, 상하이에서 오랜 시간 지내다 보니 다시금 세계 여행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떠날 준비를 마쳤는데, 내가 개인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방의 줄이 끊어졌다. 그런데 그 가방은 한국에서만 고칠 수 있는 가방이라서 한국에 가방을 고치러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그렇게 부산에 돌아왔는데, 친한 친구가 서면에 레코드 가게를 여는 타이밍이 겹쳤다. 그 친구가 나에게 레코드 가게 개점 준비 도움을 요청하여 친구를 돕게 된 것이 부산에 다시 머물게 된 첫 번째 계기가 되었다. 마침 그 시기에 부산 ‘Output’ 클럽의 민호 대표가 내가 부산 돌아온 것을 알고 나에게 연락했던 것도 부산에 머무르는 이유가 되었다. 민호 대표는 베이징에서 만나 알게 되었는데, 민호 대표가 그 시기 Output을 힙합 클럽에서 하우스 및 테크노 클럽으로 변화를 주고 싶어 했다. 그래서 Output 팀과 만나게 되었고, Output 팀에게 애착이 생겨 한국에 좀 더 지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Q. ‘Radio Revolution’이라고 하면 레코드 DJ의 이미지가 강하다. 자신의 이미지에 관해 이야기할 내용이 있다면?



다소 오해하는 부분이 있는데, 나는 레코드만 플레이하지는 않는다. CD와 USB 플레이 모두 다 좋아하고 플레이한다. 다만 주로 즐겨 쓰고 개인적으로도 선호하는 것이 레코드이다. 레코드를 모으는 것이 오랜 취미이다 보니 내가 소장하는 것들 중에 ‘레어템’이 많아 레코드 플레이를 선호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레코드 플레이가 더 재미있다. 하지만 오해는 마시라. 레코드가 아니어도 플레이할 수 있다. 레코드만 고집하지는 않는다.


Q. Radio Revolution은 스스로 파티 프로모터를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DJ로써 자신의 파티에 DJ를 섭외할 때는 무엇을 고려하는가?


우선 파티 콘셉트에 맞춘 일관성 있는 라인업을 가장 중요시한다. 그날의 분위기를 전체적으로 맞추는 라인업이 파티의 완성도에 있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같은 날 파티에 미니멀 음악이 나오다가 인더스트리얼 음악이 나오면 뭔가 분위기가 이상해질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라인업에 베테랑과 신인을 섞는 것을 좋아한다. 그렇게 해야 라인업의 균형이 잡힌다고 생각한다.


Q. ‘Radio Revolution’이라고 하면, ‘부산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부산을 베이스로 활동하기도 하고. 그래서 묻는 말인데, 부산 음악 씬을 위한 Radio Revolution의 바람이나 행보가 있나?


최근 코로나 이후로 느낀 점은 부산이 음악적 다양성 측면에서는 크게 성장했지만, 분위기는 오히려 침체하였다는 것이다. 부산에 있던 DJ도 클러버도 타 도시로 많이 빠진 느낌이 있다. 이런 점이 느껴지니 내가 그동안 소홀했던 부분이 있었다고 스스로 돌아보게 되었다. 그래서 부산을 기반으로 다양한 이벤트를 기획해 볼까 한다. 부산에 헌신하고 싶다.


Q. ‘Radio Revolution’이라고 하면, 도인 같은 느낌도 있고 화를 내지 않는 관용의 이미지도 느껴진다. 성격 형성의 계기는 무엇인가?



여행하면서 성격이 많이 변했다. 예전의 나는 예민하고 자아도 세고 타협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린 나이에 만든 클럽 이녹맨션의 성공을 겪어 큰돈도 만져 봤으니까. 그 당시에는 식당에 가면 사람들이 메뉴판에 적혀 있는 가격을 왜 보는지 이해를 못 했다. 자만심이 하늘을 찔렀다. 그러다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세계 여행을 하고 여행 도중 고생도 크게 하면서 사람이 되었다. 우리 인간은 모두 하나인 것을 깨달았고, ‘카르마’도 깨달았다. 또, 음악 생활하면서 인성이야말로 음악인으로서 가장 중요한 덕목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지금도 여전히 자신을 계속 깎아내고 다듬고 수양하는 과정에 있다.


Q. 평소의 삶은 어떻게 보내는가?


평소에는 작업실에서 음악을 듣고 음악 연구도 많이 한다. 악기 리뷰 보는 것도 좋아한다. 또 집에서 요리하는 것도 좋아하고, 프리랜서이다 보니 나만의 삶의 루틴이 있다. 서류 작업하는 시간도 정해져 있고, 비즈니스 커뮤니케이션하는 시간도 정해져 있다. 나의 루틴을 잘 지키는 편이다. 운동도 좋아하는데, 운동 중 수영을 많이 하고, 서핑도 좋아하고… 물에서 노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땅 위에서 뛰는 것은 좀. (웃음)


Q.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DJ로서의 본질로 회귀하는 것이다. 현재 예정된 DJ 투어 일정들이 꽤 있다. 지금 내게 주어진 일정들을 잘 수행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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