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우주와 작은 인간, 겸손의 종합 예술.
맥스 쿠퍼(Max Cooper)는 전문적인 과학 연구를 바탕으로 한 세계관을 독창적인 오디오비쥬얼 프로젝트로 설명하고 표현하는 런던의 일렉트로닉 뮤지션이다. 맥스 쿠퍼의 작업물은 감각과 감정을 자극하는 동시에 동시대의 인간성에 대한 깊은 고찰을 불러일으킨다. 비쥬얼 아트, 과학, 철학, 음악, 문화, 일렉트로닉 뮤직을 하나로 엮어 총망라한 레이블 `MeSH`의 설립자이기도 한 맥스 쿠퍼의 3D 오디오비쥬얼 라이브 쇼는 청중들이 무대를 감상하는 것을 넘어 경험하고 몰입하는 것까지 나아간다. Mixmag Korea는 지난번 프렉티스(PRECTXE)를 통해 내한했던 맥스 쿠퍼와 함께 그의 예술관과 인간관에 대해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Editor : 박민천
Photography : 강동우
Photo Assistant : 이소윤
Q. 맥스 쿠퍼의 작업물은 ‘설명하기’와 ‘표현하기’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 그 긴장감을 탐색하는 여정이었다고 생각한다. 가령, 가장 최근에 발매된 정규 앨범 ‘Unspoken Words’는 어땠는지, ‘설명하기’에 가까웠는지 ‘표현하기’에 가까웠는지?

‘Unspoken Words’ 앨범은 분명히 ‘설명하기’보다는 순수히 ‘표현하기’에 가까웠다고 생각한다. 이전에 발매했던 세 개의 오디오 비쥬얼 앨범은 ‘과학’에 기반해서 만들어졌으며 ‘과학’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 앨범들은 특정 과학 이론에서 비롯된 세계관을 다루고 있다. 나는 다양한 과학 이론을 토대로 각기 다른 세계관을 고안했으며, 협업 아티스트들에게도 그 세계관과 대응되는 비쥬얼을 요청했다. 시각적인 아이디어가 먼저 있었고 음악이 그 미학적 측면에 부합할 수 있게 작업을 진척시킨 경우다.
‘Unspoken Words’ 앨범은 이전작과는 다르게 개인적인 표현이나 감정으로부터 시작되었고 비쥬얼 작업 또한 그것을 중심으로 나중에 만들게 되었다. 평소의 작업 방식을 뒤집은 것이다. 내 감정을 다른 사람과 어떻게 공유해야 할지를 많이 고민했는데 흥미로운 점은 협업 아티스트들 또한 비쥬얼을 제작할 때 자신만의 방식으로 스스로를 표현했다는 점이다.
가령, 춤 같은 육체적 표현은 가장 기초적인 자기 표현의 한 가지 예시이지만 이번 앨범의 비쥬얼 측면에서 춤은 추상적인 형태로 변형되었다. 비트겐슈타인의 철학 작업물을 차용할 때도 시각적인 측면은 더욱 추상적인 방식으로 변환되어 표현되었다. 요컨데 이번 앨범은 인간의 육체로부터 해방되는 과정처럼 그려지게 되었다. 최근에는 인간이 생물학적 구조에 의해 크게 결정되고 있다는 느낌을 더욱 강하게 받고 있는데 AI와 같은 기술이 발전하면서 인간이 얼마나 육체로부터 크나큰 제약을 받고 있는지가 더욱 명백해지고 있다. 인간의 육체는 우주의 축소판이다. 내 궁극적인 지향점은 인간의 육체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이번 앨범은 포스트 휴머니즘, 그러니까 인간의 생물학적 한계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깊은 열망에서 비롯되었다. 시작부터 그런 서사를 염두해두고 앨범을 제작하지는 않았다. 내 자신을 표현하고 싶었을 뿐이고 그것의 의미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생각하다보니 결론적으로 앨범이 위에서 설명한 서사를 갖추게 된 것이다. 이번 앨범은 인간이 왜 예술 활동을 하는지, 왜 음악을 만드는지와도 밀접하게 관련이 되어 있다. 인간이 스스로를 괴롭게 할 이유가 대체 무엇인가. 인간은 인간의 조건에 대해 표현하고자 하는 근본적인 욕구를 가지고 있으며 이런 상태의 정신 상태를 가지고 존재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이해하려고 한다. 본질적으로 인간은 우주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책상과 다를 바가 없다. 다른 점은 인간은 자의식을 갖고 과거를 반추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 뿐이다. 이 점이 바로 인간이 표현을 욕망하도록 만드는 근본적인 이유이며, 인간이 육체로부터 구속을 받고 있다고 느끼는 근본적인 이유이다.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이것이 내가 이번 앨범 작업을 하면서 배운 교훈이다.
Q. ‘Symphony in Acid’ 오디오 비쥬얼 프로젝트에 팬들을 초대하여 참여시킨 배경에 대해 설명해 줄 수 있을까?
‘Symphony in Acid’ 프로젝트는 코딩 아티스트이자 인스톨레이션 아티스트인 Ksawery Komputery와 함께한 작업물이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나는 지금까지 말한 아이디어를 다른 사람들에게도 공유하고 싶었다,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는 표현할 수 없다고 느낀 것들에는 무엇이 있을지 궁금했던 것이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단어를 제시할 것을 제안했는데 언어에는 한계가 있다고 내가 이미 말해버렸기 때문에 혹여나 일상생활에서는 표현할 수 없다고 느낀 것들을 자유로이 말하는 것을 내가 방해하지는 않았는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생각과 감정과 관련된 훌륭한 데이터 베이스를 얻을 수 있었다. Ksawery는 비트겐슈타인의 텍스트, 그리고 사람들이 제공한 데이터 베이스와 내 음악이 서로 상호작용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사람들이 단어들을 계속해서 추가할 수 있기 때문에 이 프로젝트는 재생할 때마다 매번 달라지는 뮤직 비디오가 되었다.
Q. 첫 번째 정규 앨범 ‘Human’을 발매할 시기에는 뮤직 비디오나 비쥬얼 프로젝트를 제작하지 않았다. 첫 번째 앨범과 가장 최근 앨범 사이에 일어난 가장 큰 변화가 있다면?
컴퓨터 생물학 같은 과학 분야에서 오랜 시간 연구를 했는데 그 때부터 항상 비쥬얼 아트에는 관심이 많았다. 음악은 항상 만들었었고 디제잉도 오랜 시간 했기 때문에 클럽씬에 빠져들었고 클럽 트랙이나 테크노 음악을 발매하면서 어느 정도의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어느 시점에 가서는 음악을 사랑하기는 하는데도 내 삶의 다른 부분을 놓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가령, 과학이나 철학, 비쥬얼 아트를 향한 나의 관심과 열정 말이다. 그렇게 ‘Human’에서 ‘Emergence’ 앨범으로 넘어갔다.
Q. 맥스 쿠퍼의 레이블 ‘MeSH’에 대해 한국 팬들에게 소개한다면?

‘MeSH’는 비쥬얼 아트, 과학, 철학, 음악, 문화, 일렉트로닉 뮤직 등을 향한 나의 관심과 사랑을 한데 모아 총망라한 레이블이다. ‘Emergence’ 앨범으로 ‘MeSH’ 레이블을 처음 시작했는데 그 앨범은 거대한 과학적 창조론의 서사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MeSH’의 핵심은 과학, 예술, 음악을 서로 연결시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서 나온 첫 앨범은 오디오비쥬얼 프로젝트일 수 밖에 없었고 모든 트랙이 뮤직 비디오를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시각적인 아이디어를 먼저 갖고 시작했기 때문에 음악을 만드는 방식에 근본적으로 변화를 줄 수 밖에 없었는데 시각적인 아이디어가 먼저 있고 그에 맞춰 음악을 제작하는 방식이다. 꼭 한 번은 시도하고 싶었던 음악적 실험의 결과물이기도 하기 때문에 음악적으로 ‘Emergence’ 앨범이 ‘Human’ 앨범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그 이후로는 실험을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과학에 대한 관심을 향해 나아가면서 그것을 예술적인 관점으로 보기 시작하니까 마치 온 세상이 탐구할 거리가 넘쳐나는 곳처럼 보였다.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