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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ggy Gou: Gou-mania의 시대가 왔다
한국인 최초로 Berghain에서 공연하고 싶다고 했던 그녀. 그 꿈을 이뤄낸 지금도 그녀의 질주는 멈추지 않는다.
글: Aurora Mitchell 사진: Dan Medhurst | 2018-03-06
긴 녹색 트렌치코트를 바람에 날리며 Barbican 전시공간의 계단을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어오던 Peggy Gou가 첫 번째 미술작품 앞에 우뚝 선다. 그러더니 은색 글자를 가리키며 외친다. “PG!” 물론 그림을 그린 화가 Jean-Michel Basquiat가 Peggy의 팬일리는 없다. 그는 Peggy가 태어나기 2년 전인 1988년에 사망했으니까. 하지만 Peggy가 공연을 할 때면 수백 명의 사람들이 그녀의 이름을 하도 크게 연호해서 음악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을 정도이고, 이윽고 자신의 신발을 벗어 그녀를 향해 흔드는 진풍경을 연출하는 것을 보면 예술과 창의성은 확실히 Gou-mania를 가장 잘 설명하는 요소인 듯하다. 최근 한 UK 공연에서 펼쳐진 장면을 보자. “어떤 남자가 클럽 안에서 자꾸 우산을 펼쳐 들고 있는 거야. 보안요원은 계속 치우라고 하고. 영국에서는 그러면 부정탄다고 하잖아. 다들 완전 식겁하더라고!” 하지만 우산에 ‘I love Peggy’라는 글귀가 적혀있는 것을 발견한 Peggy는 그 남자에게 다가가 우산을 받아서 부스에다 꽂았다. “팬들이 못 하면 내가 대신 해주면 되지!” Peggy가 미소 지었다.

요 근래 가장 핫한 DJ이고, 프로듀서로서도 점차 인정을 받아가고 있으며 댄스뮤직에서 가장 창의적인 팬덤을 거느린 Peggy Gou지만 불과 2년 전만 해도 그녀는 한국의 가족으로부터 쫓겨난 채 베를린의 한 음반점에서 일하면서 처음으로 음반을 내볼 준비를 하고 있었다. 2016년에 Rekids, Phonica White, Technicolour를 통해 음반을 낸 뒤 지금까지 1년 반 동안 살인적인 투어일정을 감당하다 보니 어느새 스타로 우뚝 서있었다. 이번에 Ninja Tune에서 내는 EP는 Peggy의 역대급 작품으로서 벌써부터 올해의 앨범 냄새를 풍기고 있다. 네덜란드의 베테랑 DJ San Proper는 말한다. “대작나무 냄새는 또 기가 막히게 맡는 내가 하나 알려줄까? Peggy. 장담한다.”

이 같은 수직상승세는 Peggy와의 대화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녀는 활발하고, 신나있고, 과하다 싶을 정도로 활동적이고, 매 순간을 즐기는 것이 확연하게 보인다. 말을 할 때는 잠시도 손을 가만히 두지 않는 바람에 짙은 메탈블루 컬러의 손톱이 조명을 받아 여기저기서 반짝인다. 우리는 Barbican의 카페에 마주 앉았다. 커피와 당근케이크를 앞에 두고도 전혀 손이 가지 않을 정도로 대화의 속도는 빨라졌다가도 Peggy가 급속히 성공했다고 해서 그 성공을 손쉽게 이룬 것은 아니라는 말을 할 때에는 급격하게 느려졌다. “내 첫 음반을 여기저기에 많이 보냈어. Gerd Janson, Juju Jordash… 다들 거절했고. 마치 아무도 내 음악을 원하지 않는 것 같았어.” 그녀가 잠시 한숨을 내쉬더니 말을 잇는다. “점점 우울해지더라.” 여기까지는 프로듀서 지망생이라면 누구나 겪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마침내 계약을 따내고 난 뒤부터가 진짜 고생길이었다.





커리어 초반, 업계에서 겪는 일들은 그녀를 의기소침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Peggy의 음악적 스킬과 지식에 의구심을 가졌고, 그녀를 모욕적인 별명으로 불렀으며(“어떤 레이블 사람들은 업무용 이메일에 적힌 내 한국이름을 가지고 뒤에서 시시덕거렸어.”), 그 중에서도 최악은 아티스트로서 평가절하되는 것이었다. “어떤 레이블이 그저 ‘섹스어필’용으로 내 음악을 발매했다는 소문를 들었을 때는 진짜 너무 속상하더라. 와, 진짜 상처였어.” 대화 내내 키득거림과 100mph의 중독적인 열의로 일관하던 그녀가 처음으로 슬픈 기색을 내비친다.

“가끔 보면 업계의 남자들은 자주적인 여성을 마주 대하면 불안해지는 것 같아. (근육을 불끈거리는 흉내를 내며) 자기가 꼭 주도적인 입장을 차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하지만 Peggy Gou를 과소평가하는 것은 실수다. 그녀는 2016년에 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하면서 인터넷에서 화제를 일으켰다. “Berghain에서 공연하는 최초의, 그리고 최연소 한국인 여성 DJ가 되고 싶어.” 소셜미디어상에서의 일부 반응을 빌자면 다소 주제넘은 발언이지만 그녀는 그로부터 불과 몇 달 후 Panorama Bar로 가는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그녀의 에이전트 Ana Rosas와 함께 한 첫 공연이었다. Rosas는 그때를 이렇게 기억한다. “완전 자기 세상에 들어가있더라고. 주변 세상은 다 사라지고 그냥 나랑 내가 사랑하는 것만 남는 그런 거 있잖아. 지금도 닭살이 돋네. 진짜 감동적이었어!” 반면 Peggy는 말도 못하고 긴장했었다. 더욱이 본인 스스로 워낙 단골이어서 매주마다 자신이 춤을 추는 공간을 ‘Peggy’s Zone’이라고 부를 정도였으니 오죽했을까. 셋을 마친 후 한 친구로부터 거기서 공연한 지 한 20년은 된 사람 같았다는 문자를 받았을 때에는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고 한다.

좀 더 시간이 흐른 저녁, 우리는 XOYO에서 13주짜리 레지던시를 진행하는 Artwork의 세 번째 에디션에 참석하기 위해 XOYO로 자리를 옮겼다. Peggy가 Arthur와 리버풀의 샛별 Or:la와 함께 공연하게 된 것이다. 거대한 분홍색 털모자를 쓰고 긴 코트를 입은 Peggy가 도착하자 앞서 공연을 마친 Or:la가 Peggy를 힘껏 끌어안고, 두 사람은 바톤터치를 하기 전 짤막하게 대화를 나눈다.





공연 후, Or:la가 말한다. “내가 처음으로 Peggy의 회사에 들어갔을 때 우리는 Pete Tong의 Heritage Orchestra의 어떤 페스티벌 공연을 보고 있었어. 서로 알지도 못했고 제대로 소개된 것도 아니어서 꽤나 되는 대로의 만남이었지.” 두 사람은 2017년 Warehouse Project 시즌 동안에 비로소 제대로 된 만남을 가졌고 절친이 되어 수많은 라인업에 함께 이름을 올리기 시작했다. 이제 Peggy와 Or:la는 서로에게 둘도 없는 지원군이다.

얼마 뒤, Artwork가 무대에 오르더니 마이크에 대고 Peggy를 소개한다. “Peggy fucking Gou!” 관중석에서는 열화와 같은 환호성이 터져나온다. “Peggy, Peggy, Peggy fucking Gou!” Peggy의 공연 때는 가끔 사람들이 Peggy의 이름을 너무 크게 연호하는 바람에 음악소리가 잘 안 들리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한다. 다이나믹한 하우스와 섬세한 애시드에 간간히 섞인 테크노가 두 시간 동안 쏜살같이 흘러간다. 그녀가 이따금씩 로우엔드를 넣었다 뺐다 할 때마다 관중은 더욱 크게 열광한다. 그녀가 한국어로 숫자를 세는 보컬이 들어간 부드러운 애시드 컷 ‘Six O Six’를 틀자 무대 옆에 있던 한 무리의 아시아 팬들이 그녀를 향해 미친 듯이 신호를 보낸다. Peggy가 설명한다. “내 공연에는 아시아 사람들이 꼭 있더라. 내가 트랙을 틀 때마다 나한테 하이파이브를 하는데 그러면 어떤 생각이 드는 줄 알아? 그 사람들이 내 댄스플로어에 있다는 사실이 너무 좋아. 뿌듯해!”

Peggy는 자랑스러운 한국인 여성이다. 그녀는 자신의 작품에 한국의 전통음악을 도입하는 실험을 자주 하고, 한국어로 부르는 보컬을 깔기도 한다. 곧 자신의 프로덕션 무기고의 유기적인 사운드를 한층 더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가야금이라는 한국 전통악기를 배우기 위해 몇 주간 휴식기를 가질 계획인데 이런 것은 Peggy에게 언제나 솔직한 평가를 들려주는 그녀의 부모님이 가장 즐거워하는 부분이라고 한다. Peggy는 최근에 올린 한 영상을 보면 Peggy는 자신의 신곡에 맞춰 춤을 추고 있는데 그녀의 엄마는 멀뚱히 서서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있다. “내가 엄마한테 ‘엄마, 이거 어때? 내 신곡이야.’ 하면 어쩔 때는 별로래!”

Peggy의 부모님은 딸을 자랑스럽게 여기긴 하지만(그녀가 활짝 웃으며 말하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이걸 사랑한다는 것을 두 분이 아신다는 거야.”) 진지하게 음악을 하는 딸의 결정을 쌍수를 들고 환영하는 것은 아니다. Peggy는 부모님의 지원을 받고 런던에서 패션을 공부하던 학생이었다. 하지만 유학생활 중 음악에 대한 꿈을 찾은 그녀는 수업을 제끼고 Highlife의 Esa와 함께 스튜디오에 다니며 프로덕션을 배우기 시작했다. 학업은 낙제를 할 수밖에 없었고, Peggy이 부모님에게는 Peggy에게 수업을 통과할 때까지 한국에 돌아오지 말라고 했다(결국에는 통과하긴 했다). Peggy가 태연하게 말한다. “아시아의 부모님들은 굉장히 보수적인 편이야. 자녀를 의사나 교수로 키우고 싶어 하지. 요즘에는 좀 나아지고 있긴 해. 점점 더 오픈마인드가 되고 있고, 타투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고...”


엄밀히 따지면 한국에서 타투는 불법이다. Peggy는 여전히 한국에 갈 때마다 보수적인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느낀다. 그녀의 사촌 중 한 명은 타투를 너무 싫어해서 그녀를 만나지도 않는다고 한다. “부모한테 물려받은 것을 소중하게 여겨야 하고 손을 대서 망가뜨리면 안 된다고 생각해.” 하지만 Peggy는 타투를 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는 자신의 타투가 그녀의 정체성을 좀 더 잘 나타내준다고 말한다. “타투가 곧 Peggy Gou 같아.” 그녀가 노를 젓는 남녀의 타투를 만지며 말한다. “이거는 여자가 주도적으로 일을 하고 있어서 좋아.” 한국에는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지만 Peggy는 그와 반대로 컸다고 한다. “걔네가 할 수 있으면 나도 할 수 있지!”가 그녀의 좌우명이다.

다시금 그녀의 목소리가 가라앉는다. 좀 더 사적인 주제로 넘어간다는 신호다. “오빠는 늘 모범생이었거든. 그래서 부모님은 늘 내 걱정이셨어. ‘우리 딸은 뭐가 잘못된 거지?’ 하면서.” 하지만 Peggy가 국제적인 성공을 거두고, 그녀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을 보게 되고부터는 부모님의 시야가 바뀌었다. 오히려 Peggy의 아버지는 최근 그녀로부터 교훈을 얻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자식이 말을 안 들으면… 알아서 잘 할 거라는 것.

Peggy의 부모님은 처음에는 그녀가 베를린으로 거처를 옮기는 것에 찬성하지 않았지만 결국에는 자식 이기는 부모 없었다. 하지만 Berghain에서 불과 5분 거리에 살면서도 이제는 클럽에 거의 안 가고 대신 헬스장에 다닌다고 한다. 영향을 준 사람은 다름 아닌 Honey Dijon. Peggy가 전화기를 든 시늉을 하더니 Honey 흉내를 낸다. “Honey가 ‘나 헬스장이야!’ 하고 사진을 보내는 거야. 냉큼 대답했지. ‘나도 간다!’”





Peggy의 과다행동은 너무나도 중독적이어서 Honey가 스스로 무슨 일에 말려들고 있는지 과연 알고 있었을지 의문이다. 그런가 하면 Peggy가 기린 덕질을 하는 이유는 사뭇 대조적이다. “기린은 진짜 최고로 온화한 동물이야. 내 스피릿 애니멀이랄까. 기린을 보면 차분해지는 느낌이야. 나 전생에 기린이었나…” 말꼬리를 흐리던 그녀가 전세계의 프로모터들이 갑자기 그녀의 공연 때마다 그녀에게 기린을 주기 시작한 이유를 발견한 순간을 재연한다. “이게 내 라이더에 있었어? Ana Rosas, 너가 이거 내 라이더에 넣었어?!” 오늘날 그녀는 자기 집 작업실에 2m짜리 거대한 기린모델을 포함해 세계 여러 도시에서 수집한 기린 컬렉션을 가지고 있다.

스피릿 애니멀을 옆에 낀 Peggy는 침대가 딸린 작업실에서 곡을 쓴다. 커피빨과 울금차빨로 트랙 스케치를 하다가 막히면 그대로 뒀다가 나중에 다시 작업한다. “일고여덟 채널 후에 막힐 때가 있더라고.” 그녀는 재즈 코드와 피아노 음도 자주 활용한다. 그녀의 오빠는 피아노를 잘 치는데 가끔 Peggy가 있을 때 그가 뭔가를 잘 치면 Peggy는 이렇게 묻곤 한다. “왼손만 다시 쳐볼래? 베이스라인으로 딱 좋겠다!”

Peggy의 사운드는 80년대 버블 디스코 바이브가 실린 롤링 하우스에 Roland Jupiter 신스로 만든 약간의 애시드가 가미되어 있다. 그녀가 말한다. “Peggy의 사운드라고 했을 때 하우스 느낌과 애시드면 좋겠어.” 그녀의 Ninja Tune 최신 EP는 어깨가 절로 들썩이는 재즈 베이스라인과 알게 모르게 애시딕한 느낌을 전달하는 효과적인 드럼이 인상적인 생동감 넘치는 하우스 작품이다. Peggy는 ‘It Makes You Forget (Itgehane)’에서 자신의 친구 Maktoop이 한국어로 쓴 가사를 직접 부른다. 4월 중에는 그녀가 좋아하는 또 다른 레이블인 Phonica에서도 또 다른 EP를 낸다.

하지만 Peggy는 음악을 뛰어 넘는 원대한 포부를 가지고 있다. 그 중 하나는 노점에서 유기농 비타민 주스를 파는 것이다. “그런 거는 딱 마셨을 때 건강해지는 기분이잖아!” 또한 미술전시회도 열고 싶다고 한다. 누가 창의적이기로 유명한 팬들의 사랑을 받는 아티스트 아니랄까 봐, Peggy는 커스텀메이드 무선 선풍기를 만들어서 클럽에서 쓰기도 하고, 수천 개씩 만들어서 공연 때마다 팬들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스위치를 키면 ‘Have a Gou time, love from Peggy’라는 LED 문구가 뜬다. 그녀가 글래스고 공연에서 그 선풍기를 Jackmaster에게 보여주자 그는 깜짝 놀란 눈으로 선풍기를 보더니 ‘와 ㅅㅂ 대박!’ 이라고 외치더니 그걸 가지고 뛰어다니고 DJ 부스에 가지고 들어가 흔들고 사람들 얼굴에 들이밀며 바람을 쐬어 주었다고 한다. Peggy의 생생한 재연에 조용하던 Barbican 카페가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Peggy가 다시 한 번 숨을 고른다. 조금 전의 유쾌함은 온데간데 없이, 그녀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한다. “디제잉을 영원히 하진 않겠지. 나는 내가 단지 DJ일 뿐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나는 가능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어.”

덱 뒤의 Peggy가 얼마나 빠르게 이 세상을 장악했는지 생각해보면 정신을 바짝 차리고 기다릴 일이다. 기린들을 거느리고 돌아올 아티스트 Peggy Gou를 기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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